‘노동이사’ 도입 약속하고 1년 넘게 ‘침묵’
“의무 없다”지만···노사합의 지킨 곳들 多
“제도 좋은 취지를 공공기관이 어겨서야”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약속하고 정관을 개정하고도 1년 반 가까이 노동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경영에 반영하라는 제도의 취지를 정부기관이 따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양경규 녹색정의당 의원이 문체부와 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받은 ‘콘텐츠진흥원 노동이사 임명 현황’을 보면, 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8월 노동이사제 시행 이후 지금까지 노동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이사제는 2022년 1월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공운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도입됐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은 근로자대표의 추천이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은 비상임이사 1명을 이사회에 선임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주요 의사결정에 노동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하자는 취지다.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 노동이사제에 찬성 의견을 낸 바 있다.
콘텐츠진흥원도 법 개정 이후인 2022년 11월 노사 합의에 따라 ‘15인 이내의 이사회에 노동이사 1명을 둔다’는 내용으로 정관을 개정했다.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콘텐츠진흥원지부)는 같은해 12월 콘텐츠진흥원에 노동이사 추천 명단을 냈다. 하지만 그 이후 현재까지 콘텐츠진흥원의 노동이사는 공석이다. 콘텐츠진흥원은 주무부처인 문체부에 노동이사 추천 명단을 보내지도 않고 있다.
문체부와 콘텐츠진흥원은 “콘텐츠진흥원은 2023년 1월 공운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기타공공기관’으로 전환돼 노동이사 선임 의무가 없다”고 양 의원실에 설명했다. 당시 시행령 개정으로 정원기준 등이 완화되면서 많은 공기업·준정부기관이 기타공공기관으로 전환됐다.

노동이사 도입을 규정한 한국콘텐츠진흥원 정관. 콘텐츠진흥원 제공
그러나 기타공공기관 전환 이후 법적 의무가 사라졌는데도 노동이사를 두고 있는 공공기관은 많다. 양 의원실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기타공공기관 노동이사 도입 현황’을 보면,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서민금융진흥원·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한국농업기술진흥원·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한국임업진흥원 등 7곳이다.
서민금융진흥원·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한국농업기술진흥원·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등 4곳은 기타공공기관 지정 직전 노동이사를 선임했고, 기관유형 변경으로 법적 의무가 사라진 뒤에도 노동이사를 유지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한국임업진흥원 등 3곳은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 뒤 1~3개월 안에 노동이사를 선임했다. 이들 3곳은 법적 의무가 없음에도 노동이사를 새로 선임한 것이다. 기재부도 ‘법적 의무가 없더라도 기존 노사합의가 있다면 합의를 존중하길 권고한다’는 입장이다.
김정석 공공운수노조 진흥원지부장은 “노동자 전체를 위해 노동이사가 경영에 발언도록 하는 좋은 제도인데, 제도의 취지를 기관이 무시하는 처사”라며 “다른 기관들을 보면 정부가 노동이사 선임을 막는 것도 아닌데 문체부가 특별한 권한 없이 이를 막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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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의원은 “노동이사제의 가장 큰 기대효과는 ‘견제와 균형’인데, 콘텐츠진흥원이 노사 합의에도 불구하고 노동이사 임명을 차일피일 미루며 문체부와 협의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라며 “콘텐츠진흥원과 문체부가 노조와 대화를 통해 이른 시일 내에 노동이사 임명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했다.
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현재 기관 유형 변경으로 절차가 보류된 상태이며, 노동이사 임명권한을 가진 문체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