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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안녕을 묻는 행진

등대가 있는 방파제에 걸린 깃발들에 ‘진상’만 남고, ‘규명’은 없다. ‘책임자’는 있는데, ‘처벌’은 없다. 거센 바람에 올이 풀려나가버린 깃발들은 지금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거기 선 붉은 등대와 이제는 빛이 바랠 대로 바란 등대의 노란 리본이다.

10년 전 팽목항은 뉴스의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배로 1시간 반을 달려가야 하는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팽목항에는 중앙대책본부를 비롯해 수많은 몽골텐트가 가득 들어차 있었고, 혼란스러웠다. 시신이 이곳에 들어오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염없이 기다리던 유가족들이 하나둘 떠나고, 마지막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이 지키던 곳에는 컨테이너 박스 4동이 낡은 모습으로 서 있다. 거기에 304명의 사진을 걸어놓고, 그들을 기억하자는 ‘4·16기억관’도 있다. 방파제를 들렀던 사람들이 이곳을 지금도 찾는다. 거기에는 “너무 늦게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와 같은 말이 적힌 방명록이 놓여 있다.

주변이 개발되고 제주까지 오가는 페리호가 드나드는 항구가 되었지만, 이곳은 늘 쓸쓸하다. 간간이 찾아주는 방문객들이 반가울 정도다. 그런 곳에 2월26일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다. ‘세월호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 이틀째의 행진 시작을 위해서다. 전날 제주도에서 넘어온 사람들과 서울과 안산에서 온 유가족, 시민들이 함께 방파제부터 행진을 시작했다. 진도 행진의 마지막은 진도군청이다. 2년여 전 이곳에 작은 기억 공간을 마련해주기로 약속했던 진도군수를 만나서 약속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죽음으로 죽음을 덮는 일의 반복

이번의 전국시민행진의 제목은 ‘안녕하십니까?’이다. 절망과 분노의 나날을 살아가는 고통 속의 사람들을 만나서 안녕을 물으려고 한다. 세월호참사에서 사라진 국가는 이태원참사에서도, 오송지하차도참사에서도 역시 부재했다. 진실은 왜곡되거나 덮였고, 책임자들은 누구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다. 그리고 강요된 망각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여전히 진실을 알고자 하고, 책임자들을 처벌하자고 목소리 내는 피해자와 시민들에게는 어김없이 혐오와 증오의 말이 퍼부어진다.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칠 생각을 하지 못한 이 나라에서는 참사가 나면 ‘인재’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란스럽게 떠들다가 곧 다른 사건으로 관심이 옮아가고는 했다. 대형 재난참사를 겪고도 그걸 기억하지 못한 그 자리에 다른 대형 참사가 일어나서 앞의 참사를 가리고는 해왔다. 죽음으로 죽음을 덮어온 역사를 세월호참사에서도, 이태원참사에서도 반복할 것인가? 이번 행진은 그런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행진 출발은 제주도였다. 10년 전 안개 속의 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 승객들의 최종 목적지는 제주도였다. 배에는 생애 처음 수학여행을 떠나는 단원고 학생 325명이 탑승했고, 자전거동우회 회원들, 환갑기념 여행을 가던 용유초등학교 동창생들, 제주도로 이사를 가던 가족, 그리고 육지를 오가며 물류를 나르던 화물기사 등이 탑승해 있었다. 여행을 가던 그들이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공통적으로 갔을 장소가 성산일출봉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행진 출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 청소년 모임’을 대표하여 김원 학생은 말했다.

“청소년들은 자라오면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함께할 것입니다.”

그날의 공감을 다시 보고 싶다

10년 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말은 삶을 의미했다. 죽음을 거부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행동하겠다고 다짐하던 청소년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아직 청소년들이 스스로 행동하겠다고 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음에 나는 한없이 미안했다. 세월호참사 10년, 진실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자들은 그물을 빠져나가는 물처럼 달아났지만, 시민들은 달라졌다. 생명존중과 안전사회라는 공통의 목표가 생겨났고,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제 세월호참사 10주기가 채 50일도 남지 않았다. 21일간 전국의 주요 도시들을 거치는 행진 마지막 이틀(3월15일, 16일)은 안산에서 서울로 행진한다. 그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과 “안녕하십니까?” 반갑게 인사하고, 세월호참사를 잊지 않는 우리를 다시 보고 싶다. 10년 전 그날처럼 공감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나고 싶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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