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내친 북방, 자초한 외교안보 위기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윤석열 정부 출범 2년도 채 되지 않아 한반도 정세와 주변국 관계가 급격히 악화하였다. 대북 강경책과 가치외교를 내세운 윤 정부가 지난 2년간 남북관계와 외교 분야에서 벌인 일들을 보면 정말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라는 말을 절감한다. 탈냉전 후 지난 30여년간 역대 정부가 공들여 쌓아 올린 북방외교의 성과와 남북관계가 윤 정부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

대한민국의 외교안보정책은 대체로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여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주변 국가들과 선린관계를 증진하여 경제발전 등 국가번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목적으로 추진된다. 윤석열 정부건, 문재인 정부건, 그 실행 수단이 대화건, 대결이건 상관없이 이러한 목표는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윤 정부는 남북관계를 극단적으로 악화시켜 국민이 전쟁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중국·러시아와 대립하면서 스스로 한국 경제의 지도를 좁히며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더하게 하는 방향으로 역주행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압도적 힘’으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고, 북한의 미사일 시험도 막고,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양 큰소리쳤다. 하지만 북한은 굴복은커녕 지난 2년간 그 어느 때보다 빈번히 미사일 도발을 했으며 윤 정부의 대북 비난에는 더 거친 비방으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안보위기가 고조되어 국민 삶은 불안해지고 한반도 리스크도 커졌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정책은 북한을 더 위험하고 거칠게 만들어 한반도 전쟁 위기론만 낳았다. 그렇다고 윤 정부 잔여 임기 동안 북한이 굴복할 가능성도 제로에 가깝다. 윤 정부는 이전 정부의 정책을 “가짜평화”라고 매도했으나, 정작 자신이야말로 안보에 무능하고 국민 삶을 불안하게 만든 ‘가짜안보 정권’이었던 것이다.

외교 분야에서 윤석열 정부가 망가뜨린 것도 심각하다. 국제사회에서 대의명분을 주장하며 늘 당당하고 싶지 않은 국가는 없다. 그러나 비정한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많은 나라가 국민 안전과 경제적 이해관계 등을 고려하여 때로는 ‘침묵’ 등의 방식으로 대의를 회피하며 선택적으로 정의를 추구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예외였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중국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만 문제에 간섭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앞장서서 강경 태도를 보이는 등 중국, 러시아에 대해 거칠 것 없는 적대적 태도를 보였다. 두 나라와 특별히 갈등 사안이 있던 것도 아닌 상황에서 보여준 이러한 행동이 노태우 정부부터 쌓아온 30년의 북방외교 성과를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가치외교의 기치 아래 발생한 일이었다.

과연 윤석열 정부가 북방외교를 소멸시켜서 무엇을 얻었는지 뚜렷하지 않다. 대신에 잃은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가치외교라는 뜬구름 같은 정치적 목표에 경제의 합리성을 종속시킴으로써 한국 경제를 위험에 빠뜨렸다. 북방외교가 우리에게 준 우호적 안보환경과 어렵게 개척한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동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당장 한·중관계 악화 속에서 최대 교역 국가인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빨간불이 들어왔으며 한국 제품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던 러시아에서 우리 기업이 철수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였다.

안보적 측면에서 상실도 크다. 한·러 우호의 끈이 끊어진 틈을 타고 러시아를 통해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의 둑이 무너지고 있으며, 중국의 대북 제재도 이완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18일부터 예정되어 있던 해외 방문을 출국 나흘 전 돌연 연기하였다. 언론에 따르면 그 이유 중 하나가 ‘북한의 도발 우려’였다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진정 북한의 도발을 걱정한다면 그 대처를 위해 무엇보다도 북한의 우방인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협력을 강화했어야 한다. 그러나 윤 정부는 늘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면서도 중국과 러시아를 밀어내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더 이상의 역주행을 멈추고 한반도 평화와 한국 경제를 위해 북방외교를 다시 살리고 남북 간 무력충돌을 막기 위해 남북대화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념에 매몰된 윤 정부가 비판을 귀담아듣거나, 아니면 자기검열이라도 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윤 정부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도 이를 검증할 능력이 없어 스스로 오류를 알지 못한다’는 ‘더닝 쿠르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답은 하나다. 주권자인 국민만이 윤석열 정부의 역주행을 막을 수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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