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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보름달, 이방인

입력 2024.02.29 20:09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합정역, 보름달, 이방인

물론 소란도 좋지만 단란은 더욱 좋아서 잊은 듯 잊힌 듯, 정든 땅 언덕 같은 파주에서 단출히 지내다가도, 서울에 또 볼일이 생기기는 마련이라 좌석버스를 타고 자유로를 유유히 달려 합정으로 간다. 언젠가 국민MC 유재석씨가 유산슬이란 예명의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면서 히트한 노랫말대로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이지만 이곳도 여느 곳과 사뭇 다를 바 없는 한 지하철역이다.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을 만큼 항상 한 움큼씩의 사람들이 합치고 흩어지기를 되풀이하는, 해변처럼 쓸쓸한 곳이기도 하다.

나는 고작 30여분 만에 전혀 다른 풍경이 연출되는 것에 잠시 어리둥절하다. 그렇다고 도시물을 모를 리 없지만 벌써 파주의 듬성듬성한 분위기가 그립고 뭔가 질척거리는 늪의 기운이 알싸하게 퍼지는 것 같다. 이를 중화시키려 불러오는 풍경 하나. 그 옛날 덕유산 아래의 고향에서 새벽밥 먹고 거창읍 차부에서 부산으로 떠나던 날의 아침과 천일여객 타고 하루 종일 달려 고무신 위로 발등이 퉁퉁 부은 채 내렸던 종점의 저녁을 한꺼번에 영접하는 것이다.

휘발유 냄새, 미세먼지쯤이야 이제 그냥 무뎌진 몸. 하차등에 불이 들어오고 내릴 차례다. 두세 칸의 버스 발판을 디딜 때 이런 생각도 한다. 그 언제 적 우주인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아폴로 달 착륙선의 계단을 망설이며 내릴 때처럼 그런 기분을 호출하는 것. 그렇게 그런 마음을 먹으면 실제 아무 생각 없이 후다닥 내릴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발바닥을 치고 올라온다.

드디어 휘황한 도시에 착지했다. 차가운 불빛과 스쳐 가는 눈빛을 몸에 두른 채 이제부터 난처한 이방인의 신분을 유지하면서 더욱 낯선 기분을 만지작거린다. 달은 그냥 못 본 체하면 안 되는 동네다. 이 뒷골목은 언젠가 세상 떠날 때 스치게 될 달의 이면과 자매결연한 도시일지도 모를 거라고 여기는 순간, 아뿔싸, 빌딩 사이 보름달이 떠 있구나. 그렇다면 여기는 불빛의 분화구일지언정 달의 표면은 분명 아니다. 순진한 상상력은 너무 쉽게 박살이 났다. 발등 아래 밑창으로 생각을 구부리면, 나를 운반하느라 지친 구두의 밑바닥. 달의 피부와 가장 닮았을 그곳을 느끼며, 축축한 골목 끝의 외딴 약속장소를 찾아 내 걸음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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