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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써도 ‘짠내’ 대신 ‘힙내’ 나는 이유···수리권 찾는 사람들

입력 2024.03.03 16:48

지난달 27일 수리상점 곰손에서 워크샵에 참여한 시민이 도자기를 복원하고 있다. 이홍근 기자

지난달 27일 수리상점 곰손에서 워크샵에 참여한 시민이 도자기를 복원하고 있다. 이홍근 기자

“이 그릇들은 제 ‘반려 식기’ 같은 그릇인데 조금씩 이가 나가더니 이렇게 싹 나간 거예요. 고칠 그릇 3개만 가져오라 하셨는데, 도저히 놓고 올 수 없어서 4개를 다 들고 왔어요.”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옆 한 지하 공간에 모인 이들은 품에서 조심스레 깨진 도자기 파편들을 꺼내 책상에 늘어놓았다. 언뜻 보면 쓰레기 같지만, 한때 주인의 식사를 책임지던 반려 식기이자 애착 그릇, 여행지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타임머신의 역할을 하던 물건들이었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이들은 그릇에 난 상처의 단면을 갈고, 접착제를 발랐다. 이가 빠진 부분은 에폭시 퍼티 반죽으로 조심스레 메웠다. 흉터를 옻으로 쓰다듬고 나니 그릇들은 새 옷을 입고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지난달 27일 수리상점 곰손에서 도자기 복원 워크샵이 진행되고 있다. 이홍근 기자

지난달 27일 수리상점 곰손에서 도자기 복원 워크샵이 진행되고 있다. 이홍근 기자

도자기 복원 수업이 이뤄진 공간은 지난달 17일 새로 연 ‘수리상점 곰손’이다. 깨진 사기 조각을 품에 안고 온 이들처럼 ‘물건을 놓아주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제로웨이스트 열풍을 이끌었던 국내 1호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 운영진 ‘알짜’ 중 6명이 사비를 털어 이곳을 만들었다. 도자기 복원 뿐만 아니라 옷 수선, 우산 수리, 색조화장품 재활용과 같은 수업이 주기적으로 진행된다.

알맹상점이 일회용품 용기 사용을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면, 곰손은 ‘수리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만들어진 공간이다. 곰손 공간지기 중 한 명인 고금숙 활동가는 “제로웨이스트가 뜨면서 환경운동이 대부분 쓰레기 재활용에 집중하게 된 거 같다”면서 “재활용보다 더 중요한 건 애초에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래 쓰고 안 사고 안 버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려면 수리권에 대한 이해와 물건을 고칠 수 있는 생활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수리권은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해외에선 널리 인정받는 권리이다. 소비자에게 물건을 사거나 버릴 권리뿐만 아니라 고쳐 쓸 권리도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기업이 가전제품을 판매하려면 고장 시 고칠 방법도 소비자에게 함께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2022년 1월부터 판매되는 가전제품에 ‘수리 가능성’ 등급을 부착하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된다.

수리상점 곰손에 비치된 수리 공구들. 이홍근 기자

수리상점 곰손에 비치된 수리 공구들. 이홍근 기자

곰손을 찾는 이들에게 물건을 고치는 일은 귀찮거나 ‘짠내나는’ 일이 아니다. 고 활동가는 “살기 위해서 물건을 만들었던 과거엔 수리 수선이 귀찮은 노동이었지만, 이제는 물건을 자기화하는 특별한 과정이 되었다”면서 “물건이 품질로서 부가가치를 얻는 시대는 지났다. 요즘 세대에겐 사생활이 드러난 물건이 고부가가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그릇을 고쳐간 분들에겐 이제 저 그릇이 제일 눈에 밟히는 그릇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 활동가는 “재사용·재활용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물건을 전시하거나 판매할 공간이 아직 많이 없다”면서 “일상기술 공유와 함께 팝업도 함께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육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카페 오듯이 와서 수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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