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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당선돼야 진짜 정치인?

입력 2024.03.04 19:50

한 지방자치단체의 테마파크 조성 사업 자문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지역 인구 감소, 특히 청년 인구 순유출이 심한 지역이었고, 사업 예정지는 접근성이 나빴다. 여간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회의를 주최한 공무원들도 아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사업 자체를 재고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지자체장의 공약 사업이기 때문이다.

최근 1700억원을 들인 경북 영주시 테마파크 ‘선비세상’에 하루 평균 방문자가 100명도 안 된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비슷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안동 유교랜드, 대구 삼국유사 테마파크, 문경 에코랜드, 청도 신화랑풍류마을도 수백, 수천억원을 들여 지었으나 운영비 일부도 못 벌고 있다. 혹시나 해서 ‘22대 총선’과 ‘테마파크’ 키워드로 검색해 봤다. 최근 한두 달 새 지역구 후보 및 예비후보들이 발표한 공약들이 줄줄이 나왔다. 반려동물 테마파크 공약이 각기 다른 네 지역에서 나왔고 K스타, 인공지능, 메타버스, 익스트림 스포츠, 심지어 ‘해병대’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 공약도 있었다.

선거 때만 되면 지역 정치인들은 지역 개발 공약들을 내놓는다. 지역의 오랜 숙원사업을 이뤄내고,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유치하며, 관광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내용들이다. 이런 행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든 보수든 대동소이하다. 이에 대해 정치를 잘 안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일단 당선이 돼야 하니까요. 지역에서 표를 얻으려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지역이 낙후한 원인과 해법을 그런 사업들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저출생, 청년세대 유출, 기후위기와 기술 전환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산업과 일자리 등 복합적 위기에 대응하려면 지역 단위를 넘는 거시적 전략,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만한 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치가 꼭 필요하지만 정치인들은 대체로 시간이 없다. 지역구를 발로 뛰어야 하고 민생 현안을 청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단 당선’에 필요한 정책들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선거구 획정을 미루고 미루던 여야는 텃밭 지역구를 지키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을 한 석 줄였다. 안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대비 적은 편이고, 최근 선거 때마다 계속 줄인 비례 의석을 더 줄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일이 별로 회자되지 않는 것은 비례대표 의원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크지 않다는 증거다. 선거 때마다 각계 인재를 영입해 비례 후보로 내세우지만 “다음 선거에서 지역구 당선증을 받아와야 진짜 정치인”이란 식으로 대해 온 정당들 탓이 크다.

이쯤에서 돌아보자. 지역구에서 당선돼야 진짜 정치인이라는 근거는 무엇일까? 치열한 선거 현장에 나가 싸워서 당에 소중한 한 석을 안겨줬으니 가상하기는 하겠지만,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애쓴 사람에게 상으로 주는 자리인가? 지역 현안들이 중요하다 해도 300명 중 251명이나 거기 매달려야 하는지, 세대, 성별, 인종, 장애, 직역,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 등에 따른 다양성, 그리고 기후위기 문제는 그보다 안 중요한지 묻고 싶다. 가장 궁금한 점은 이것이다. ‘당선될 공약을 내세워서 일단 당선되고 보는’ 식으로 겨뤄서 이기는 게 대체 무슨 실력이며, 무엇을 위해 그런 경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인가?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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