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1호 영입인재 박지혜가 의정부갑 후보 경선에서 구사일생으로 생존했다. 기후 전문가란 게 영입 이유였는데 전문가 몫의 비례후보로 가지 않고 지역에 출마하게 되자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박지혜를 누가 알아? 상대 후보는 그 지역을 오랫동안 일궈온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은 지역 실력자였다. 정상적인 계산이라면 박지혜가 아버지의 지역 후광을 받는 상대 후보를 이기기 힘들다. 이 사건을 기후와 생태 문제를 투표의 중요 기준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을까? 아직은 전면적 신호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지만 일종의 유권자 운동으로서 이번 총선에 기후유권자 운동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고 싶다. 지금까지 기후·생태 문제가 유의미하게 투표에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 포장지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상대방이 하면 나도, 그렇게 ‘모양내기’ 수준이었다.
박지혜가 단수공천이 아니라 경선에 내밀렸을 때, 민주당 공천에서의 기후 문제는 역시나 포장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시작한 초짜 정치인, 과연 사람들이 기후 문제로 자신의 표를 결정할 것인가? 어쨌든 박지혜는 일단 살아남았다. 이제 본선인 총선에서 의정부 주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거친 도전이 기다린다.
기후 ‘모양내기 전술’에 변화 올까
지금까지 상황으로만 보면 기후 문제에서 국민의힘은 영입인재를 비례로, 민주당은 지역 경선으로 보내는 다른 선택을 했다. 물론 국민의힘에서 최종적으로 당선권 비례 순번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역시 포장지 역할을 할 것인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정책 이슈라고 부르는 기후 문제, 심지어는 저출생 문제도 총선 향방을 바꾸는 주요 이슈가 아니다. 모양내기 전술로만 기능했다. 그런데 이제 변화가 올까?
정의당과 녹색당이 선거연합으로 녹색정의당을 이번 총선에서 띄웠다. 그런데 모양도 안 난다. 전략 실패일 수도 있고, 녹색을 한국 사회의 현실적 변화의 한 축으로 국민들이 받아들이기엔 시기상조인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총선을 거쳐 녹색을 전면에 내세운 정치인이 국회에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새로운 국면이 22대 국회에서 펼쳐질 것이다.
지금까지 기후 정책은 한국에서는 보수 쪽이 더 적극적이었다. 기후특위를 국회에서 추진한 것은 한나라당 시절의 이부영이었다. 국회에서 반핵 입장을 내건 것도 초선 시절의 오세훈이었다. 에너지 분야에서 기후 문제를 적극적으로 내세운 흐름이 보수에서 더 강했던 것은,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거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의장이 된 세계적인 자원경제 전문가인 이회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그의 형이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이다. 형은 이제 보이지 않지만, 이회성은 여전히 기후 논의에서 세계적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간이 흘렀다. 스웨덴에서 그레타 툰베리가 등장했다. 다음 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더 높은 환경 혹은 생태 감수성이 될 거라는 지난 세기의 예상들이 현실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의회에서 녹색당은 이제 메이저 정당이다. 아마 한국 거대 양당이 지금처럼 비대화되는 기형적 구도가 아니었으면, 한국 녹색당의 현실적 영향력도 지금보다는 강해졌을 것이다.
한국도 시간이 지나면 기후·생태 문제를 자신의 삶에 직결되는 문제로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늘어갈 것이고, 그들에게 호소하지 않으면 기존 정치인들이 도태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총선을 코앞에 두고 그린벨트나 농지를 대거 풀겠다는 정부 발표를 더 이상 보지 않게 될 것 같다.
정치와 사회는 서로 민감하게 영향을 준다. 정치가 발전하면 사회도 영향을 받고, 사회가 발전해도 정치가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서로 거울 같은 관계다. 사회가 깨끗한데 정치만 더러운 일,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번 총선은 기후 후보와 생태 후보들이 그 어느 때보다 약진할 총선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보면서 기후 정치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할 것이다. 그야말로 기후 세대가 몰려오고 있다.
기후 정치는 변화와 미래의 정치
영입인사가 아닌 당 자체 인력으로서 생태 정치와 기후 정치를 계속해온 사람들도 있다. 결국은 사회가 기후 쪽으로 생태 쪽으로 한 발씩 나가면, 기존 정당 내에도 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지금까지의 한국 정치는 증오의 정치였지만, 기후 정치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변화의 정치고 미래의 정치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속에서 하는 투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을 위해 투표하는 전환의 계기를 22대 국회가 이뤄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