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대규모 손실 사태가 발생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분쟁조정기준안을 11일 발표했다. 홍콩 ELS 판매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조8000억원(39만6000계좌)이고, 올 2월 만기도래액 2조2000억원 중 손실액이 1조2000억원이다. 현재 지수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올해 말엔 누적 손실액이 6조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ELS는 기대 수익률이 높지만 투자 원금까지 모두 잃을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이다. ELS 같은 금융상품이든 부동산이든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이 져야 한다. 그러나 판매 과정에서 투자자를 속이거나 원금 손실 가능성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감원 검사 결과 이번 사태 배경에 은행들의 무리한 실적 경쟁과 불완전판매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은행들은 수수료 수익을 얻기 위해 ELS 판매 목표를 전년 대비 50% 이상 높이고, 홍콩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데도 전사적으로 ELS 판매를 확대했다. 그 결과 사리 분별력이 떨어지는 고령의 투자자에게 ELS를 권하고, 컴퓨터 원격 제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대리 가입시키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홍콩 ELS 계좌의 21.5%(8만4000개)가 65세 이상 투자자라고 하니 은행들의 판매 전쟁이 얼마나 과열되고 무책임했는지 짐작이 간다.
금감원이 이날 내놓은 분쟁조정안은 매우 구체적이다. 창구에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투자자 연령과 투자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배상을 차등화했다. 금융사 과실 여부를 따져 기본배상비율(20~40%)을 정한 뒤 투자자 유형별로 배상비율을 더 높이거나 낮추는 방식으로 최종 금액을 결정하도록 했다. 금감원 조정안에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ELS 판매·관리에서 총체적 부실이 확인된 만큼 은행들은 피해자 배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번 사태엔 기본적으로 금융당국의 책임이 크다. 홍콩 ELS의 은행 판매 위험성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방치했다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2019년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에서도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한 적 있다. 당국은 부랴부랴 고위험 상품의 은행 판매 금지 대책 등을 마련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금융당국은 금융 소비자와 국민에게 사과하고, 촘촘한 재발방지책을 세워야 한다. 소를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반복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