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전공의 이탈 사태에도 공공병원을 비상진료체계에 동원하면서, 공공병원을 위기 때마다 ‘땜질식’으로 동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민간병원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은 공공병원의 병상과 의료진 등 시설을 확충하고,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2~3배씩 불어난 공공병원의 재정 손실 문제를 해결해 ‘공공의료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일부 공공병원의 분위기를 보면 정부가 의료공백의 대체제로 공공병원을 적극 활용하는 것에 비해 정작 환자들은 크게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대부분 공공병원들은 거의 변화가 없고 입원 환자는 조금 늘어난 것 같은데 파업의 영향인지, 그동안 서서히 증가하던 것의 연장선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영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당직을 서고 연장 근무를 하고 있지만 조 원장은 “야간 진료한다고 걸어놨는데도 환자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공공병원 외상센터에서 일하는 간호사 A씨는 “상급종합병원으로 갔다가 입원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저희 병원으로 오는 분들이 많다”며 “특히 외상 환자에 대한 의료공백이 생겨서 전국에서 환자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씨는 또 “새로 온 환자의 상태에 따라 기존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를 급하게 내리고 새로운 환자를 받고, 경증환자도 일단 입원하는 경우가 많아 예측도 불가능하고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정부는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이탈하자 지역의료원 36곳 등 66곳의 전국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해 대응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의 의료공백에 대비해 경증 환자를 공공병원 등 지역의 2차병원으로 옮기고, 지역의료원은 야간·휴일 등에 연장 진료하도록 했다.
정부는 보건의료 위기 때마다 공공병원을 동원해왔다. 한국은 병상의 90% 이상을 민간병원이 차지하고 공공병상의 비율은 10%에 미치지 못한다. 코로나19 유행 때도 약 2년간 지역의료원들을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해 코로나19 환자만을 받도록 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2021년 1월 당시 전체 의료기관의 5% 밖에 되지 않는 공공병원들이 전체 감염병전담 병상의 92%를 담당했다.
조 원장은 “다들 반응이 ‘또 우리야?’라고 한다”고 전했다. A씨는 “코로나19 사태때 정부가 ‘지원을 많이 해주겠다’ ‘추후에 또 감염병이 오면 공공병원이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고 얘기했었지만 그렇게 말한 것에 비해서는 보상이 많이 미미했다”면서 “공공병원에서 저희는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는 건가’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병원이 위기는 코로나19의 타격이 컸다. 공공병원이 대부분 병상을 코로나19 환자에 내주는 동안, 나머지 진료과는 축소·중단하면서 기존 환자를 인근의 민간 병원에 빼앗겼다. 감염병전담병원 지정이 해제된 후에도 공공병원들은 1년 6개월 이상 병상 가동률이 30~40%에 머무는 등 이전의 절반 이하로 줄며 경영난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공공병원 기능 회복에 4년이 걸릴 것으로 분석했지만 정부의 회복기 지원은 고작 6개월로 끝났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의 ‘2022 회계연도 결산서’를 보면 상당수의 지역의료원들의 의료손실은 코로나19 이전보다 2~3배씩 불어났다.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우 코로나 발생 이전인 2019년 340억 적자에서 2022년 727억까지 적자가 불었다. 그러나 정부가 올해 공공병원 적자 보전을 위한 역량강화 사업 예산으로 배정한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1000억원 가량에 그친다. 공공병원마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보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반면 민간병원엔 코로나 손실보상금으로만 5조원이 지급됐다. 지난해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정부는 2020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민간 의료기관 488곳에 코로나19 손실보상금 총 4조9900억을 지급했다. 적자에 빠진 공공병원과 달리 민간 상급종합병원은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수백억 이상의 흑자를 냈다. 2019년 의료이익이 551억이었던 서울아산병원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부터 의료이익이 급증해 2022년 1690억을 기록했다. 삼성서울병원은 2019년엔 202억 적자를 보다가 2022년엔 530억 흑자를 냈다.
이같은 재정 지원의 차이는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격차를 더 벌렸다. 조 원장은 “코로나19 이후 민간병원들이 남은 손실보상금으로 월급을 올려 의사를 채용해 인건비가 엄청나게 올랐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떠나고 경영난에 빠진 공공병원은 의사 구인난에도 시달렸다. 정 의원이 전국 지자체와 공공기관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9월 기준 공공의료기관 222곳 중 44곳(19.8%)이 의사를 확보하지 못해 67개 진료과를 휴진했다. 이 중 큰 병원이 적은 지방에서 지역 거점 병원 역할을 담당하는 지역의료원은 35곳 중 23곳(65.7%)의 37개 과목이 의사가 없어 문을 닫았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공공병원의 시설·장비·인력 등 인프라가 평소 충분한 재정 뒷받침으로 갖춰져야 의료위기 상황을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데, 평소 지원 없다가 위기 상황에 동원하고 끝나면 인프라 구축은 안 하는 상황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의료공백 대응을 위해 이달부터 매달 1882억의 건보 재정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중증 중심 진료에 충실한 상급종합병원에 사후 보상하고 경증환자 회송료 인상, 교수 등 전문의의 중환자 진료 시 정책지원금 신설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은 “민간병원이 전공의에 의존해와 벌어진 문제이면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국민들이 낸 건보 재정으로 대형병원 등 민간의료기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건 비판할 점”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비상대책 중 지방의료원을 강화하는 건 하나도 없다. 공공병원에 투자 없이 명령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민간의료기관 위주로 가고 있는 정부 정책을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정부의 이번 의료개혁안에도 ‘공공’은 빠져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00명 증원안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공공의대 신설과 지역의사제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 나 실장은 “그나마 공공성과 관련한 정부의 ‘계약형 지역의사제’는 계약을 언제든 파기할 수 있고 안정적으로 복무할 수 있는 의사인력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며 “(공공병원의) 제일 큰 문제는 돈이 없는 것인데 지금과 같은 독립 채산제가 아니라 ‘공공의료 정책기금’을 신설해 시설·장비·인력 확보에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