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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주는 선물

입력 2024.03.21 20:24

수정 2024.03.2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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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요.’ 만나는 이마다 이런 하소연을 한다. 행복은 저 멀리 신기루처럼 깜박일 뿐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전시된 타인들의 행복한 모습은 우리의 남루함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감당해야 할 인생의 무게가 태산처럼 느껴질 때 비애감도 덩달아 커진다. 고달픔, 서러움, 억울함의 감정은 무거운 추가 되어 우리를 심연으로 잡아당긴다.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순간 지금이라는 기적을 한껏 누리지 못한다.

행복의 신기루를 좇는 이들일수록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통은 즉시 제거되어야 할 적이다. 고통은 행복의 철천지원수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병철 교수는 고통에 대한 전반적인 두려움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통에 대한 내성도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초래할 수 있는 일에 연루되려 하지 않는다. 사랑조차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외로움이 심화되고 자기 삶을 위협할 수도 있는 타자에 대한 적대감 또한 커진다.

고통은 우리의 일상에 균열을 만든다. 고통은 익숙한 세계를 교란시키는 불쾌한 손님이다. 그 손님을 적의의 태도로 대하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불쾌한 손님이 고분고분하게 물러나지는 않는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어떤 존재도 고통을 회피할 수 없다. 고통은 우리 삶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를 열어 보이는 창문이기도 하다. 사람은 언제까지나 자기 동일성 속에 머물지 못한다. 그 동일성을 깨뜨리는 일들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운명에 차인 상처든, 타자와의 관계에서 빚어진 아픔이든, 적대적인 세상에서 겪은 불유쾌함이든 우리 속에는 그런 상처자국이 많다. 그 자국은 말끔히 지울 수 없다. 음유시인인 레너드 코언은 ‘앤섬(Anthem)’이라는 노래에서 “모든 것 속에는 갈라진 틈이 있다. 그 틈을 통해 빛이 스며든다”고 했다. 고통이 우리 몸과 마음을 스쳐간 흔적인 틈을 메우는 일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그 틈을 통해 스며들고 있는 빛에 주목해야 한다.

고통을 반길 수는 없다. 고통은 우리 삶의 주도권을 빼앗는다. 그렇기에 불유쾌하다. 하지만 고통은 우리가 한사코 외면했던 삶의 다른 차원을 열어준다. 타자의 세계이다. 고통은 우리를 다른 이들의 고통과 연결시켜준다. 윤동주는 ‘팔복’이라는 시에서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구절을 여덟 번 반복한 후에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라고 시를 마무리했다. 시인이 말하는 슬픔은 애상이 아니다. 시대적 울분과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 속에서 비로소 그는 다른 이들의 슬픔에 깊이 연결되었던 것이다. 그 슬픔의 연결을 통해 그는 오히려 희망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있었다.

행복을 위해 고통을 말끔히 제거하거나 외면하려 할 때 우리는 동시에 타자들의 고통에 무감하게 된다. 고통은 우리를 타자의 세계와 연결하는 든든한 줄이다. 내가 겪는 고통을 통해 타자들의 고통에 눈을 뜨고 그 고통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 할 때 책임적 공동체가 형성된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책임으로 수용하지 않고 도피하는 것이 곧 악이라고 말한다. 고통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기독교 절기상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기의 막바지이다. 예수는 세상 사람들이 겪고 있는 모든 아픔과 설움과 연약함을 자기 속으로 오롯이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외면해도 괜찮은 남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종교가 아니라 삶의 신비를 가르쳐준다. 고통은 중력처럼 사람들을 심연으로 잡아당긴다. 그들을 아래에서 떠받치고 지탱해주는 이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난폭하고 냉혹하고 무정한 세상을 치유하는 이들이다. 봄바람이 되어 사람들 속에 깃든 생명을 깨어나게 하는 사람들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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