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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 발등 찍기 정치’를 끝내자

다시 선거철이 돌아왔다. 국민의 대표랍시고 지난 4년간 목소리를 높이던 분들이 바로 그 국민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황송하게도 폴더 인사를 받으면서 주권자 대접을 받는 듯 살짝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데 문득 뒤따르는 의문. 주권자 국민과 봉사자 국민대표가 선거철만 지나고 나면 왜 명령하는 국민대표와 복종하는 국민의 관계로 전도되어 버릴까?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대원칙은 일상정치에서 왜 법전 속의 장식으로 전락하고 마는가? 이번 총선부터라도 국민과 국민대표의 주객이 전도되는 반민주적 현실, ‘제 발등 찍기 정치’가 왜 매번 반복되는지 제대로 성찰하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우선 선거제에 내재된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이 한 표를 행사하면서 신성시하는 현재의 ‘선호형’ 선거제도 자체는 원래 귀족정처럼 소수계층에 정치과정이 독과점된 체제의 대표선출방식이다. 신분제에 따라 소수의 엘리트만이 정치과정을 장악하는 소규모 사회에서 ‘동등’한 조건하에 인물의 자격과 능력에 따른 경쟁을 중심으로 대표를 뽑을 수 있는 게 ‘선호형’ 선거제다. 민주화가 되었더라도 일반 국민들은 생업에만 종사하고, 인물 중심의 ‘선호형’ 선거제로는 정치과정을 ‘잘난 사람들의 리그’로 전락시켜 또 다른 정치적 신분사회를 조장하는 반민주적 구조를 벗어나기 힘들다.

무엇보다 선출되는 대표들의 면면을 보라. 사회의 인구분포를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성별, 직능, 계층, 세대 등 복잡한 이해관계와 의견들을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는가? 여성 대비 남성의 압도적 우위는 말할 것도 없고, 청년 대표가 장식용에 불과한 것은 여전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일반 국민들이 직업을 유지하면서 나랏일을 담당할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봉쇄되어 있다는 것이다. 국민 다수를 구성하는 다양한 직업군의 소상공인이나 노동자는 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국민대표를 충분하게 국회로 보내지 못하는가? 그들은 왜 돈 걱정 없거나 가방끈 긴 잘난 사람들의 후광에 눌려 정작 자신들의 동료들을 외면하는 ‘제 발등 찍기’ 투표 성향을 버리지 못하는가? 왜 교사나 공무원은 원천적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되어야 하며, 일부 전문직을 제외하고는 생업 때문에 선출직 대표가 될 수 있는 실질적 기회를 박탈당한 국민들이 어떻게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라고 자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잠시 휴직하고 자유롭게 국민대표로 활동하다가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이상론적인 특혜가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기본권이게 하는 것이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의 진정한 모습이지 않겠는가.

더구나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지역 중심의 소선거구제는 지역이익은 과대 대표되는 반면 다른 사회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의지는 과소 대표되는 문제가 있다. 실체 없는 인물론에 치우치면서 지역구별 다수파만이 국가 전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대표로 선출되고, 지역구에서는 소수파이지만 전국적 단위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의 국민들을 권력구조에서 배제하는 매우 반민주적 제도이다. 이를 보완해야 할 정당투표에 따른 비례대표제는 턱없이 부족한 의석수만 보장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위성정당이라는 반헌법적 반칙에 의해 왜곡된다.

그나마 현행 선거제도가 나름의 장점은 있어서 다행이다. 승자독식의 이 선거제에 따르면 소수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최악의 정치세력은 확실하게 심판할 수 있다. 신성한 한 표를 허비하지 않겠다는 다수의 작은 단심이 모여, 차라리 차악을 선택하더라도 제일 나쁜 최악의 후보나 정당은 심판할 수 있다. 아무리 공권력을 오남용해서 언론과 시민의 입을 틀어막더라도, 민생투어의 정치쇼로 허무공약을 남발하더라도, 억지스러운 낙인찍기나 철지난 색깔론 같은 정치공학적 프레임으로 현혹하더라도,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DNA를 지속적으로 키워온 대한국민의 저력을 한껏 폭발시킬 수는 있는 것이다.

정보화, 고령화, 기후위기, 신냉전 등 중차대한 대전환의 시대에 민생은 외면하고 이념논쟁과 권력놀음에만 매몰돼 애써 가꾼 민주공화국을 권위주의체제로 뒷걸음치게 만든 최악의 무뢰한들을 심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직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주권자 국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누가 우리의 자긍심은 물론 삶의 기반과 미래까지 갉아먹고 있는지 제대로 심판하는 것이 ‘제 발등 찍기 정치’를 확실히 끝낼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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