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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말고 코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입력 2024.03.24 20:05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압구정 현대 바로 사러 갑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비트코인 자산 내역을 올렸다. 개당 5600만원에 산 비트코인 가격이 1억원을 돌파하면서 20억원이던 평가액이 35억원으로 불어난 내용이었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는 “집도 없는 흙수저인 나한테 이런 날도 오네. 이번 사이클에 3억원 찍으면 퇴사하겠다”는 글도 올라왔다.

비트코인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급등하면서 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는 무용담과 함께 나도 한번 해볼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당 1억원까지 찍었다가 최근 조정 국면을 맞고 있지만 투자 수요는 계속 몰리는 분위기다.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하며 제도권 자산시장과 가상자산시장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자 글로벌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여기에 비트코인 공급이 줄어드는 반감기가 다가오면서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한때 은 시가총액을 넘어서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도 유독 한국의 투자 열풍이 거세다. 1~3% 정도이던 ‘김치 프리미엄’은 10%대까지 치솟았다. 국내에서 비트코인을 살 때 해외보다 10%는 비싸다는 것으로, 그만큼 국내 투자 열기가 강하다는 의미다. 전 세계에서 원화로 거래된 비트코인 물량은 달러로 거래된 물량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고 한다. 가상자산시장에선 이미 원화가 기축통화처럼 됐다.

그 중심에는 2030 청년들이 있다. 가상자산시장은 투자자의 개인정보가 모두 암호로 돼 있어 연령대별 투자 비중을 수치로 확인할 순 없다. 다만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단체채팅방 등에서 가상자산 투자 여론을 주도하는 부류, 청년 관련 금융상품이나 주식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가상자산시장에는 자금이 몰리는 흐름 등을 종합해보면 2030세대가 코인 투자 열풍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들이 주식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실제 가치를 가늠할 수도 없는 코인으로 몰려드는 것은 저성장 기조 속에 기업들 실적 상승세가 예전만 못하고, 그렇다고 내 집 마련을 도모하기에는 여전히 집값이 너무나 비싸다는 점이 주요하게 고려됐을 것이다. 정부는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저, 고용률은 역대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청년 취업자 10명 중 1명은 소득과 고용상태가 불안정한 단순노무직이다. 현실이 팍팍하니 노후 대비 등 미래를 위한 투자는 뒷전으로 밀린다. 청년층 10명 중 4명은 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 직역연금 중 어느 하나에도 가입돼 있지 않다. 보험업계에선 평균수명이 늘어나 종신보험, 연금보험 가입자에게 나가는 보험금은 매년 많아지는데 젊은층의 보험 가입은 줄어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크다고 한다. 비트코인 열풍은 기성세대가 이미 과실을 모조리 따먹어버린 제도권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청년들이 새로운 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라도 한 번쯤 성공해보리라는 절실함이 투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그랬듯 선거철이 다가오자 정치권은 청년 공약들을 내놓는다. 다양한 이름의 장학금부터 집·결혼·출산 지원까지 청년과 관련된 모든 영역을 망라하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 발행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제도화 공약도 나왔다. 몇년 전 정부 당국자가 청년층의 코인 투자 열풍을 두고 “(청년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잘못됐다고 어른들이 얘기해줘야 한다”는 꼰대 같은 말을 했다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사퇴 요구가 빗발쳤던 것에 비하면,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선 진일보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입만 열면 ‘청년’을 외치면서도 이번 총선에서 여야 거대 양당의 청년 공천 비율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청년들이 선거 때만 반짝 소환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을 위한 정치와 정책이 꾸준히 관철되려면 국회에서 당사자들이 목소리 낼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 세계 최고의 자살률이 함축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비트코인 제도화 여부는 금융 시스템과 자산시장의 관점에서 논의될 사안이지 청년 대책으로 툭 던져놓을 문제가 아니다.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공정과 상식이 자의적으로 소비되고, 다양한 가치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솔깃한 공약을 쏟아내도 그들에게 희망이 될 수 없다. 내일이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는 한 제2, 제3의 코인 열풍은 계속될 것이다.

이주영 경제부문장 겸 경제부장

이주영 경제부문장 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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