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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고귀함을 알아볼 의무

입력 2024.03.25 20:20

수정 2024.03.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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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월호 참사 10주기다. 당시의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새 나도 ‘어른’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모순들이 응축되어 벌어진 일이었고, “미안하다”는 고백은 분명 그런 사회를 만들어낸 것에 대한 간절한 반성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십 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 공동체는 과연 더 나은 곳에 도착했을까.

단언컨대 한국 사회는 그 마음에 값하지 못했다. 사회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찾아온 건 적나라한 각자도생과 혐오의 세상이다. 그러나 무에서 유가 나오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이 사회가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라는 걸 모두에게 재차 확인해 주었을 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구 사회가 개인주의가 강한 반면 한국 사회는 집단주의가 강하다는 믿음이 상식으로 통했다. 요즘의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화되었다는 진단도 그런 상식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어떤 의미에서 아주 ‘개인주의적인’ 사회였다. 공동체를 위한 헌신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믿음이 더 설득력을 가졌다. 공동체를 말하던 사람들은 자주 졌고 억울하게 죽기도 했지만, ‘나만’을 말하는 사람들은 출세해 힘을 갖고 자주 이겼다. 그런 세상이니까,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도 ‘공동체’를 의식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공동체에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 가늠해보는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크든 작든 책임을 지닌 이들 누구도 공동체를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그런 사회를 만든 것에 자신도 책임이 있음을 알기에 “미안하다” 토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제아무리 무책임한 각자도생의 사회라 해도 누군가는 공동체에 헌신하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는 것을.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았던 정치지도자들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기를 마다하지 않은 이들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노회찬 같은 이들이 그 목록에 속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한국 사회가 더 나빠졌다는 증거 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 존경할 만한 정치인들이 드물어졌다는 것이다. ‘운동권 청산’이라는 구호, 정권과 의료계의 극단적 대립 어디에도 우리 공동체를 염두에 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려는 정치인들을 솎아내고 자기 사람만 남기는 공천, ‘윤석열 심판’만을 되풀이하는 구호에도 공동체에 대한 고려는 전무하다. 거대 정당을 비판하면서 혐오와 차별에서 지지 세력을 찾는 세력 역시 공동체를 위한 정치와 거리가 멀다.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책임이 사라진 자리에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정치공학으로 무장한 출세주의자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을 공동체의 대표자로 뽑은 건 우리들이니, 분명 우리들 각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존경할 만한 정치인을 알아보는 능력을 상실한 채 출세와 자리 지키기를 공동체보다 우선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고, 그들이 내뱉는 증오와 비난의 언어에 동참한 온 것은 다름 아닌 우리들 민주시민이다.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 골목에서 유가족이 “내일을 위해 투표합시다” 당부하는 대자보를 쓰도록 만든 것도 우리다. 대자보는 우리를 향한 당부가 아니라 책임의 추궁으로 읽혀야 한다.

잘 찾아본다면, 한국 사회가 존경했던 정치지도자처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들은 지금도 없지 않다. 차별과 혐오에 편승하거나 침묵하는 대신,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는 정치인도 있다. 각자도생과 자력갱생을 넘어, 먼저 손을 내밀며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정치의 의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런 고귀한 동료시민을 알아볼 의무가 있다.

최성용 사회연구자

최성용 사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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