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죽는 것을 ‘과로사’라고 부른다. 과로사를 뜻하는 일본어인 ‘카로시(karoshi)’가 세계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불명예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1999년 여름 도쿄의 민간병원에서 일하던 한 소아과 의사가 세상을 떠났다. 나카하라 도시로, 당시 44세.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곧 21세기를 맞이한다. 경제대국 일본의 수도에서 행해지는 너무 빈약한 소아 의료. 불충분한 인원과 진부화된 설비. 이 폐색감(사방이 꽉 막힌 느낌) 속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계속해나갈 기력도 체력도 없다.”
도시로의 아내 노리코는 이 유서를 읽었을 때 확신했다. “의사의 과로사를 없애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그로부터 25년, 노리코는 계속 투쟁하고 있다.
도시로는 살아 있을 당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숨을 소진하며 당직근로를 하고 있다. 마차의 말처럼 일하고 있다. 병원에 살해당하겠다.” 노리코는 남편의 과중한 노동을 법정에서 증명했고, 그의 죽음이 산업재해였다는 사실도 인정받았다. 병원이 책임을 인정하게 했고, 이후 과로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 제정 운동의 중심이 됐다.
그렇게 조금씩 장시간 노동에 대한 대책이 일본에서 진행됐다. 2019년 일반 노동자의 시간외 노동에 연 720시간의 상한을 두는 ‘일하는 방식의 개혁’도 시작됐다. 하지만 의사라는 업종에서는 아직도 장시간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
한 달간의 시간외 근로가 80시간을 넘으면 과로사 위험이 굉장히 높아진다. 이에 월 80시간은 ‘과로사 라인’이라 불린다. 2019년 일본 정부 조사에 따르면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의 약 40%가 과로사 라인을 넘어 일하고 있었다. 노조 등이 재작년 실시한 조사에서는 죽음이나 자살을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근무의(병원에 고용된 의사) 비율이 6.9%나 됐다. 2022년 5월 26세 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그는 사망 직전 한 달간 시간외 근로가 200시간을 넘었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의사판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시작하지만 내용은 미흡하다. 개혁 이후에도 병원 근무의들은 연 1860시간까지 시간외 근로가 허용된다. 연 1860시간은 월로 환산하면 155시간이다. ‘과로사 라인’의 두 배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최근 많은 연수의(전공의)가 직장을 떠났다. 의대 정원 늘리기가 직접적인 이유일지 모르지만, 배경에는 장시간 노동이나 일하는 시간에 맞지 않는 저임금에 대한 항의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 현재 그런 움직임은 없지만, 젊은 근무의나 연수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야간이나 휴일 등의 숙·일직 근무는 노동시간으로 정당하게 셈해야 한다. 학회나 최신 의료기술 연구 등도 과중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노리코는 최근 다른 유족과 함께 ‘의사의 과로사 가족회’를 만들었다. 소중한 생명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도록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노리코는 이렇게 말한다.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은 의사에게 수술받길 원하는 환자는 없을 것이다. 의사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