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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돌봄 시대가 오고 있다

노인은 병원 순례가 일상인지라 나 역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이 점점 잦아진다. 그때마다 다른 보호자들을 관찰하게 되는데, 좀 티격태격한다 싶으면 영락없이 우리처럼 모녀지간이다. 상대적으로 며느리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에 병원 수발을 하는 아들은 많아졌다. 어머니 휠체어를 밀고 와서 접수하는 젊은 아들, 초고령의 아버지를 부축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고령의 아들도 보인다. 일본은 이미 가족 내 돌봄의 3분의 1을 남성이 담당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남성 돌봄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지만 내 주변엔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 우선 60대 은퇴자인 지인은 은퇴와 동시에 파킨슨병에 걸린 장모를 아내와 함께 집에서 돌본다. 흔히 ADL(Activities of Daily Livig)이라고 부르는 식사, 보행, 용변, 목욕 등의 일상 돌봄은 아내가 맡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깜빡깜빡 인지가 저하되는 장모님의 말벗을 해드리고, 화초를 함께 가꾸는 등의 정서적 지원은 자기 몫이라 여긴다. 물론 기꺼이 수행하지만 그렇다고 은퇴 이후 꿈꿨던 제2의 인생이 미뤄지고 있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50대 직장인인 다른 지인 역시 2년간 어머니를 돌봤다. 이웃에 살던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지면서 낮에는 다행히 주간보호센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밤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어머니 집으로 퇴근해서 어머니를 씻기는 등의 ADL 돌봄을 수행했다. 그런 자신에 대해 아내와 자녀들은 불만이 없었고, 멀리서 사는 여동생도 종종 부모 돌봄을 분담했지만, 고립되었다는 느낌, 자기 일상이 사라진 것에 대한 괴로움은 컸다.

40대 프리랜서인 후배는 외동아들이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어머니의 주 부양자가 되었고, 결혼해서 분가한 이후에도 집수리, 보험업무 등 본가의 대소사를 맡아서 했다. 그러다 어머니의 낙상과 골절, 입원 이후에는 간병까지 떠맡게 된다. 이성(異性)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고 용변 뒤처리를 하는 일은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당황했고, 간병인을 구한 이후에는 엄청난 간병비 때문에 난감했다. 그는 장차 어머니가 더 늙고 병들면 어떻게 될지 몹시 두렵다.

물론 며느리 돌봄 시대를 물려받은 것은 딸들이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딸의 돌봄은 18.8%로 며느리의 돌봄 10.7%를 훨씬 상회한다. 나 같은 K장녀의 독박 돌봄 이야기들이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내가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면 아들의 간병은 성립하지 않는다”(히라야마 료, <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는 말처럼, 남성 돌봄 이면에는 여전히 여성의 그림자 노동이 숨어 있다. 돌봄의 젠더불평등은 여전하다.

하지만 우리가 아들 돌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이런 저출생·고령화·비혼 시대에 그것의 확대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며,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통적인 남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압력 때문에 공론장에서 논의되기 쉽지 않아서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남성의 돌봄은 그들이 자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으며 타인의 개입을 꺼린다는 점에서 블랙홀 같다고 한다. 다행히 이런 일을 먼저 겪은 일본에서는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다. 2009년에는 ‘남성 돌봄 전국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2014년에는 한 치과의사가 ‘남성 돌봄교실’을 열었다. 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머리가 허옇게 센 중년 남성들이 진지하게 음식 먹이는 법, 기저귀를 가는 법, 자세 바꿔주는 법, 양치시키는 법 등을 실습하고 있었다.

우리도 남성 돌봄 시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남성 돌봄의 이야기는 며느리의 돌봄, 딸의 돌봄, 영케어러의 돌봄과 겹치면서도 또 다를 것이다. 그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하고, 배우고, 질문하면서 우리 사회의 돌봄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돌봄 사회는 남녀 모두 ‘보편적 돌봄 제공자’(낸시 프레이저)가 돼야만 우리 곁으로 다가올 미래다.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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