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개혁 다 잘했다는 윤 대통령 담화, 시민 울화만 키웠다

서울 한 대학병원의 의료 종사자가 1일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가 방영되고 있는 티비 앞을 지나고 있다. 2024.04.01 한수빈 기자

서울 한 대학병원의 의료 종사자가 1일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가 방영되고 있는 티비 앞을 지나고 있다. 2024.04.01 한수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의대 증원 문제에 관한 대국민 담화를 했다. 취임 후 세번째 대국민 담화인지라 꽉 막힌 의·정 대화 물꼬를 틀지 주목했으나, 윤 대통령은 ‘2000명 증원’ 입장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 또한 정부의 종전 입장을 되풀이한 것에 불과하다. 의료계는 “하나 마나 한 말”이라고 혹평·반발했다. 의료대란 해법은 없고 독단적인 국정 운영 기조만 재확인한 담화였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2000명 증원’ 당위성을 길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시민들은 의대 증원 필요성을 알고 있다. 단지 정부의 조정력·리더십 부재를 탓할 뿐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의사 증원 찬성’ 여론과 ‘정부 대응 비판’ 여론이 공히 높은 게 이를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정치란 국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했지만, 절반만 맞는 얘기다. 정치의 본령은 사회적 갈등의 조정이고, 이 기능이 멈추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지금 의료대란이 보여준다. 시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이걸 묻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이날도 아무런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의대 증원처럼 갈등이 첨예한 사안은 논의 단계마다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 그러나 2000이란 숫자의 근거·수용성을 두고 의·정은 견해차가 크다. 지금껏 정부는 대학입시와도 맞물린 이 복잡다단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의료계와 제대로 논의한 적 있는가. 그간 대통령실은 여권에서 2000명 증원 문제에 다소의 여지를 두거나 대화를 촉구하는 발언이 나오는 즉시 ‘타협은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내년도 대학별 의대 증원 배정도 강행했다. 지금도 “2000명은 최소치”라며 빗장을 걸어놓고,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단일안을 의료계가 가져와보라고 하면 대화의 첫 단추가 끼워지겠는가.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이종섭 전 호주대사 임명 등 불통식 국정운영에 대해 전혀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화물연대 파업 강경 대응, 건폭몰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3자 변제, 원전 확대 등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을 들며 정부가 다 잘해왔다는 식으로 말했다. 총선 민심이 사납다보니 여당에서 윤 대통령 탈당론까지 나오지만, 정작 당사자인 윤 대통령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윤 대통령 담화에 “2000명 후퇴 없이는 협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의대 교수들은 이날부터 진료·수술 축소에 들어갔고, 개원의들은 주 40시간 ‘준법 진료’를 예고했다. 그러나 의사들도 일단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싸우는 게 의료 소비자인 시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의협이 총선 표를 무기 삼아 겁박하는 행태도 즉각 멈춰야 한다. 출구 없는 대치가 길어질수록 의·정 모두 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시민의 몫이 된다.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 시 ‘2000’이란 숫자에 유연해지고, 의·정은 하루빨리 실효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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