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어린이 조준사격

정유진 논설위원

대구경 소총은 직경 10㎜ 이상의 탄환을 사용하는 총기로, 보통 원거리에 있는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사용된다. 원거리 동물을 사격할 때는 한 발에 명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 입은 동물이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자지구에서 구호활동을 한 캐나다 의사 포지아 알비는 중환자실에 실려온 7~8세 어린이 두 명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들은 머리에 정확히 한 발씩 대구경 총알을 명중당한 상태였다. 이는 누군가 아이들을 조준해 원거리에서 저격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대구경 총알은 연약한 아이들의 신체에 더 큰 충격파를 준다. 혈관·신경·뼈·조직 등 모든 것을 파괴하고, 즉사하지 않더라도 사지를 절단해야 하는 일이 아이들일수록 더 많이 발생한다.

이스라엘군은 저격수가 아이들을 표적 삼고 있단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한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 활동했던 의사들의 말은 다르다.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한 9명의 의사는 머리와 흉부에 집중된 아이들 총상의 위치는 조준사격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인 의사 이르판 갤러리아도 병원에 연달아 실려온 여러 명의 5~8세 어린이들이 모두 정확히 머리에 총알을 명중당한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당시 아이들은 이스라엘 탱크가 철수하자 가족과 함께 칸유니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뒤에 남은 저격수가 아이들만 골라 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갤러리아는 가자지구를 떠나던 날, 한 소년이 달려와 작은 선물을 건넸다고 전했다. 모든 생필품이 부족한 가자지구에서 이 소년이 선물로 줄 수 있었던 건 해변에서 주운 돌멩이였다. 소년은 아랍어로 돌멩이에 이렇게 새겨놓았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담아, 가자지구에서.”

이런 아이들을 폭격하고 조준사격하는 전쟁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지난 3일(현지시간)까지 가자지구에서 사망한 3만2975명 중 어린이가 3분의 1을 차지한다. 폭격으로 죽어가던 아이들은 이제 굶주림으로 죽어간다. 이스라엘이 구호단체 접근을 차단한 탓에 5세 미만 아동 34만6000여명이 영양실조 상태에 놓였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전멸’이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데이르알발라에 위치한 알아크사 병원에서 한 팔레스타인 소녀가 전날 폭격으로 숨진 시신 앞에 서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데이르알발라에 위치한 알아크사 병원에서 한 팔레스타인 소녀가 전날 폭격으로 숨진 시신 앞에 서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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