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가 문화방송(MBC)의 일기 예보 그래픽 ‘미세먼지 1’ 에 대해 ‘관계자 징계’를 의결했다. 관계자 징계는 선방위가 내릴 수 있는 가장 높은 법정 제재다. 날씨 보도를 선거 개입이라며 제재한 것은 국내외를 통틀어 유례 없는 일이다. 정부 비판이라면 일상적 보도까지 마구잡이로 제재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번 만큼은 기가 막혀 헛웃음만 나온다. 이쯤되면 보안사가 언론기관에 상주하며 기사 참견을 하던 1980년대 전두환 신군부와 다를게 뭔가.
선방위는 MBC가 2월27일 뉴스에서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가 1㎍/㎥임을 전하면서 파란색 바탕에 숫자 ‘1’의 그래픽 이미지를 화면에 띄운 것을 문제 삼았다. 이 그래픽이 더불어민주당의 ‘기호1’을 연상케 한다며 국민의힘이 방심위에 민원을 제기하자 선방위가 신속심의 안건으로 채택해 지난 4일 중징계를 의결한 것이다. 여당과 방심위·선방위가 ‘원팀’처럼 움직이며 언론사를 ‘입틀막’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체 일기예보를 보며 총선을 떠올릴 유권자가 몇이나 될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문제없다고 한 사안을 선방위가 굳이 나서서 ‘칼춤’을 춰야 할 일인가.
선방위의 이번 결정은 한국언론사에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선방위는 공직선거법(8조2항)에 따라 선거방송 공정성을 위해 설치된 합의제 민간 독립기구로 중립성이 생명이지만, 선방위는 여당의 언론검열 하청기구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로 지난달 1~27일 방심위에 접수된 정당·단체 전체 민원 189건중 137건이 국민의힘 민원이다. 선방위는 이를 넘겨받아 하루가 멀다하고 MBC를 검열대에 올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가 875원이면 합리적’ 발언을 다룬 MBC 보도를 방심위에 민원 제기한 것도 국민의힘이다. 이쯤 되면 심판 역할을 해야 할 방심위·선방위가 선수로 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방송장악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 선방위 파행의 근본 배경이겠지만, 제도상 허점도 살필 필요가 있다. 여야추천 위원 수 6대2의 기울어진 방심위가 여권추천 위원들의 일방독주 속에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부·여당이 위원 구성 관행을 무시하고 합의제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 만큼 기구 구성에 균형과 합의 정신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여당의 청부 민원 통로가 된 현행 민원 제기 방식도 손질이 불가피하다. 정당은 아예 민원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 하다. 무엇보다 심판 대신 선수와 같은 행태를 보인 방심위·선방위의 선거 개입 의혹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