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연애남매>의 한 장면. jtbc 제공
누구에게나 가보지 않은 길이 있다. 외둥이로 자란 내게는 언니나 오빠가 있는 세계가 그렇다. 남매 관계는 모두가 다 달라서, 내가 가지 않은 길이 어떤 길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요즘 화제인 JTBC <연애남매>는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남매’들의 세계를 잠깐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여러 남매가 한집에 모여 살며 서로의 연애에 참견하는 황당한 설정임에도 단 1화만에 엄청난 설득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연애와 가족이라는 소재로 사랑의 범위와 깊이를 무한히 확장하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연애보다 남매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다. 누가 누굴 좋아하는지보다 누가 누구의 남매인가를 더 먼저 알고 싶다. 첫 번째로 남매임이 밝혀지는 가족은 그야말로 화목한 가족의 전형이다. 자상한 부모님, 사랑스럽고 멋진 남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다. 연애 프로에 ‘엄친딸’처럼 완벽한 사람들이 나오는 설정은 익숙하지만, 그들의 성장 과정을 부모님의 인터뷰로 듣다 보니 부모님의 따뜻한 성정과 넘치는 사랑이 첫 남매의 완벽함을 더 실체가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는 더 놀랍다. 한 오빠는 과거를 떠올리며 ‘혈기왕성한 부모님’이란 표현으로 에둘러 싸움이 잦았던 부모님을 곱씹는다. 유난히 서로를 끔찍이 아끼고 살피던 또 다른 남매는 서로가 전부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한다. 그 두 이야기가 ‘완벽한 가족’이라는 플롯의 위험성과 단편성을 깨닫게 한다. 불안정한 가정환경 속에서 동생만큼은 그늘 없이 자라길 바라 단 한 번도 동생에게 짜증 낸 적이 없다는 다정한 오빠, 아픈 엄마를 간호하느라 청춘의 많은 조각을 포기하며 자라왔지만 그 순간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 없다는 강인한 누나의 이야기가 너무나 아름답게 들린다.
각기 다른 남매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육각형 인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올해의 트렌드 키워드로 언급된 ‘외모, 성격, 학력, 집안, 직업, 자산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이 완벽한 육각형 인간’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낀 이유는 저 여섯 잣대가 마음에 들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결함 없음’이 선망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 때문이었다. 부끄럽게도 첫 남매를 보며 나 역시 그 잣대로 그들을 판단했다. 하지만 이 남매들에게 푹 빠지다 보니 완벽한 조건이 아닌 고유한 매력의 힘을 믿게 된다. 미리 정의된 조건을 충족한 육각형보다, 결핍과 부재를 자신의 방식으로 돌보면서 자란 그 고유한 형태가 훨씬 더 아름답다.
외둥이인 나는 누군가의 자매이자 남매들과 친구가 되며 컸다. 남의 집밥을 먹고, 남의 남매의 조언과 충고를 흡수하면서. 그렇기에 내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다른 가족의 우애와 사랑, 갈등과 다툼이 조금씩 관여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이렇게 자라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육각형을 추구하는 대신 완전히 연결되고 얽히고설키며 말이다.
옹기종기 모인 <연애남매>의 여덟 남녀가 처음으로 함께 먹는 끼니는 각자의 부모님이 미리 챙겨 준 집밥으로 꾸려졌다. 식탁에 올라온 각기 다른 집의 김치, 갈비, 찌개들이 접시와 접시를, 집과 집을 옮겨 다닌다. 집밥을 챙겨오지 못한 남매가 맛있게 다른 집 반찬을 먹으며 미소 지을 때 한 집안의 사랑이 다른 집안으로 번지는 것을 봤다. 더 진해지며 번지는 건 사랑뿐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한동안 집밥을 가져오지 못한 친구와 함께 집밥을 먹는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보게 될 것 같다.
![[언어의 업데이트]완벽한 ‘육각형 인간’이란](https://img.khan.co.kr/news/2024/04/06/l_2024040501000036600017482.jpg)
2015년부터 빅데이터로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를 분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넥스트밸류>(공저), <말의 트렌드>(2022)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