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모두 텃밭으로 가자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모두 텃밭으로 가자

울창할 울(鬱)은 답답할 울이기도 하다. 형성문자이지만 29획이나 되는 이 한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숨 쉴 틈도 없는 빽빽하고 곤란한 상태가 느껴지니 상형문자인가 싶기도 하다. 좀체 빠져나갈 곳이 안 보이는 우울함, 그토록 노력했는데도 인정과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억울함은 병이 되곤 한다. 각자에게 우울과 억울의 이유는 1000만 가지겠지만 정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에는 정치로 잘 풀리는 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훨씬 많다.

그럴 때 텃밭은 소소한 처방약 중 하나다. 텃밭은 인과관계가 뚜렷하다. 좋은 씨앗이 좋은 땅과 물과 농부를 만나면 좋은 결과를 만든다. 농사가 잘 안되었다 하더라도, 병충해 때문이든 불순한 일기 때문이든 농부의 실수 때문이든 그 이유가 분명하다. 그러니 농사를 망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농부는 다른 방법이나 다른 작물을 고민하게 된다. 왜 자신은 안 풀리고 왜 세상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지 화가 나게 하는 정치와는 달리 이유 없이 답답하고 억울할 일이 적다. 게다가 밭고랑 사이를 누비다 흐르는 땀과 흙 냄새와 콩깍지와 들판의 푸른 기운은 그 자체로 정신건강에 특효약이다.

무엇보다 텃밭은 ‘연결’을 느끼게 한다. 계절과 작물이 연결되고 흙 속 미생물과 열매가 연결되고 나와 자연이 연결되고 텃밭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연결된다. 그 연결은 노동시장에서 얻어낸 화폐를 지출해 규격화되어 선별 포장된 상품만을 고를 수 있는 소비자인 내가 아니라 스스로 일구고 거두고 나누고 성공하지만 그만큼 실패하고 고민하는 나와 우리로서의 감각이기도 하다. 그래서 파트타임 아마추어 농부는 기후와 먹거리 위기가 시나브로 자기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텃밭에는 즐거움뿐 아니라 많은 수고로움과 어려움이 있다. 사다 먹는 게 훨씬 싸고 편하고 뒤처리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친환경적이고 낭만적인 슬기로운 텃밭 생활을 꿈꾸어보지만, 텃밭에 필요한 물품들마저 인터넷으로 해외 직구를 해야 하고 5월에는 넘쳐나는 쌈채소에 골치를 썩고 7월에는 풀과의 전쟁 끝에 좌절을 겪을지도 모른다. 도시 생활자에게는 한두 평의 땅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텃밭에서 적지 않은 것을 배우고 힘을 낼 수 있다.

그러니 모두 텃밭으로 가자. 마침 버드나무 가지에 물이 오르고 땅에서 뭐든 튀어나오는 시기다. 땅이 없으면 스티로폼 화분이라도 장만하고 친구네 밭에라도 놀러 가고 그것도 어려우면 농민회의 꾸러미라도 신청하자. 물가 못 잡는 무능한 정부 비판을 넘어서 대파를 키우는 농민의 사정을 들을 수 있는 연결을 시도해보자.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밭을 그대로 두는 농부는 없다. 씨를 뿌리기 전에 좋은 밭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밭을 만드는 데에는 시간과 땀과 자연의 도움이 필요하다. 밭에 가서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잇고 일구어야 한다.

더구나 기후위기의 시대에 땅을 돌보고 작물을 돌보는 일은 더 이상 기성의 매뉴얼대로 가능하지 않다. 극단화된 정치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매뉴얼도 없다. 땅과 사람들이 서로 많이 만나서 해법을 더듬어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는 민주산악회가 아니라 민주텃밭회를 시작할 때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