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권심판론에 불을 지른 집권 여당

류근식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심은 집권 여당에 냉혹한 심판을 했다. 애당초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집권 여당이 선방하기 위해선 야당의 정권심판론에 대해 집권 2년 동안의 정책 성과로 대응하거나 의미있는 새로운 정책 공약을 제시하면서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했어야 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은 선거 막판까지도 유권자에게 감동을 줄 만한 정책 하나 제시하지 못했다. 정책 경쟁은 보이지 않고 오직 말싸움 선거, 무정책·무감동 선거로 일관했다. 미래가 없는 후진적 선거가 전개되었다. 국민은 실망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야당의 정권심판론에 대응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 즉 이·조 심판이 민생이라는 외침이었다. 어떻게 야당 대표들을 심판하는 게 민생이라는 말인가.

정치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고 경제는 국민을 잘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는 국민에게 희망이나 행복을 주었나? 아니다. 장기 불황에 고물가, 고금리로 국민의 삶은 어려워지고 있다. 여야 간 대화와 협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포스트 코로나 이후 급변하는 국제정세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대중, 대러, 대북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더욱이 폭등한 물가는 서민들의 생계를 위협한다. 통계청의 3월 물가통계자료를 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대를 기록하고 있다. 사과와 배 가격은 각각 80.7%, 78.0% 급등했고, 귤도 120.9%로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1500억원의 재정 지원 및 유류세 인하 지속 등 정부가 물가안정책을 폈지만 백약이 무효다. 하지만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2일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기상 여건이 개선되고 정책 효과가 본격화하면 하반기엔 물가가 빠르게 안정될 것”이라 했다. 정부의 늑장 대응이 문제를 키웠다는 여론이 강한데, 이 말을 믿을 국민은 별로 없을 듯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경제 추락, 정치 실종, 외교 참상, 안보 불안 등 총체적 난국이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집권 여당은 이 같은 난국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과 야당이 제기한 언론 자유와 민주정치의 복원, 그리고 고물가, 실질소득 감소, 장기 내수 불황 등 민생경제 파탄에 대해 어떤 정책 대안과 대책이 있는지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 의료대란 장기화와 대통령의 ‘대파 875원 합리적’이라는 발언, 이태원 참사·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양평고속도로·명품백 수수·주가조작 등 각종 의혹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와 이와 관련한 국회 통과 법률안에 대한 대통령의 연이은 거부권 행사는 민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임명 25일 만에 결국 호주대사를 사퇴한 이종섭 ‘호주런’ 사태로 교민들까지 분노케 했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은 선거 막판까지 반전의 정책카드 하나 없이 이·조 심판을 외치며 스스로 정책 선거를 포기했다. 대통령은 선거 개입 논란에도 민생토론회를 지속하며 수조원에서 수백조원에 달하는 선심성 투자 약속만 남발했을 뿐이다. 결국 제대로 된 정책 경쟁 없는 무감동 선거를 자초한 집권 여당이 정권심판론에 불을 지른 것이다.

류근식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류근식 국회 입법정책연구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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