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봤는가? 봄마다 색색의 꽃잎을 터뜨려 겨우내 쪼그라들었던 마음을 활짝 펴주는 갖가지 모습의 꽃나무들도 씨앗에서 그 삶의 처음을 시작하고 밥상에 오르는 각종 봄나물들 역시 씨앗에서 시작한다. 인간도 그렇다. 그러니 씨앗이 사라진다면 세상도 그걸로 끝이다. 씨를 말린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다.
예부터 농부들은 씨앗지킴이였다. 그해의 먹거리를 책임질 농사는 전해에 갈무리해 두었던 씨앗을 꺼내 튼실한 것들을 잘 골라 준비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대량으로 짓는 농사도 마찬가지이고 소량의 다양한 식물들을 키우는 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콩, 깨, 상추, 파, 배추, 호박, 오이… 밥상에 올릴 음식이 다양해지려면 밭에 뿌리고 심을 씨앗도 다양해야 한다. 오랫동안 바로 이 일을 여성들이 거의 도맡다시피 해왔다. 시골에서 텃밭을 지켜온 여성들이 곧 우리 땅의 씨앗지킴이인 것이다. 도시로 이주한 할머니들이 손바닥만 한 빈 땅이라도 발견하면 여지없이 씨를 심고 무언가를 가꾸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에게는 경작본능이 있는 거 아니냐며 더러 웃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경작본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씨앗이 없다면 어떤 것도 키울 수 없다. 누군가 세상 모든 씨앗을 제 손아귀에 넣게 된다면 그야말로 세상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을 것이다. ‘있을 것이다’라는 미래시제를 썼지만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은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바이엘, 카길, 몬산토 등 다국적 농기업체들이 해왔던 일들인 것이다. 특히, 몬산토는 1997년에 이미 국내 종자회사인 흥농종묘, 중앙종묘도 인수해 고추, 무, 배추 등 수십 가지 씨앗을 ‘특허’라는 이름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 씨앗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그들에게서 씨앗을 사야만 한다. 46억년 된 행성인 지구가 품고 키워 온 씨앗들이 한낱 자본주의 기업이 좌우지하는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씨앗을 상품으로 전락시켜 농사와 농민을 쥐락펴락하려는 속셈은 다국적 농기업들만 가진 것은 아닌 듯하다. 얼마 전 한 지인이 “농협이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인이 있는 마을에서 매해 씨앗을 받아 이듬해 농사를 지어왔던 어르신들에게 농협이 해마다 무상으로 모종을 가져다 안겼다고 한다. 씨앗을 심어 모종을 내는 일은 품이 들고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이라 점점 농협에서 모종을 얻어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 더 이상 씨앗을 받지 않게 되니 어느 해부터는 결국 이듬해 심을 씨가 말라버렸다. 이렇게 되자 농협이 이제는 모종을 돈을 주고 사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새해가 되어 한 해 농사를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 직접 갈무리한 씨앗이 한 톨 남지 않게 되었으니 별수가 없었다고 한다. 꼼짝없이 씨앗상품시장에 걸려들어버린 것이다.
<거대한 전환>을 쓴 칼 폴라니에 따르면, 상품이란 시장에서 팔기 위해 만든 것을 일컫는다. 씨앗이 시장에서 팔기 위해 만들 수 있는 성격의 것일까? 씨앗이 상품이라면 씨앗이 자라서 된 식물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 종속영양생물인 인간의 목숨과 삶이 한낱 기업체들의 손아귀에 좌우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세상에서 좋은 삶은커녕 지속 가능한 삶이나마 꿈꿀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