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의 시대, ‘연대와 돌봄’의 가치를 말하는 영화 ‘바로 지금 여기’

이예슬 기자
다큐멘터리 영화 <바로 지금 여기>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바로 지금 여기> 포스터.

수몰되는 태평양 섬,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땅, 삶의 터전을 잃은 북극곰. ‘기후위기’가 떠올리게 하는 위험의 상징적 장면들은 대부분 일상과 동떨어져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일터와 삶 깊숙이 침투해 있는 실질적인 위협이다. 폭염과 수해, 한파와 산불의 일상화가 대표적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바로 지금 여기>는 그 위협에 대처하는 시민들의 삶에 주목했다. 남태제·문정현·김진열 감독은 지난 2년 동안 쪽방촌 주민들, 여성 소농, 청년·노년 기후활동가의 삶을 각각 좇았다. 다음달 1일 공동체 단위 상영을 시작하는 <바로 지금 여기>의 세 감독은 1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후위기에서 우리를 지키는 것은 연대, 돌봄, 사랑과 같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폭염 속에서도 삶을 버티게 하는 것은 ‘약자 간의 연대’

“돌봄과 연대가 사느냐 죽느냐를 좌우해요.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돌보지 못하고 고립되면 죽음으로 이어지죠. 쪽방에 들어가 보니 약자들을 생존하게 하는 건 돌봄과 사랑이더라고요.”

첫 번째 에피소드 ‘돈의동의 여름’을 연출한 남 감독은 두 달간 쪽방에 머무르며 쪽방촌 주민들의 삶에 녹아들었다. 남 감독이 들여다본 쪽방은 덥고 열악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함께 위기를 견디는 법을 알고 있었다. 주민들은 주민협동회를 만들어 서로 단절되지 않도록 함께 밥을 먹고, 폭염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을 나누고, 거리로 나서서 함께 생존권을 외쳤다.

남 감독은 “쪽방에서는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돕는 것이 일상화 돼 있다”며 “지금 같은 시대에 위기의 해법은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서로를 돌보는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땅과 가장 가까운 이들, 기후위기에 맞서다

문정현 감독이 <바로 지금 여기>에 등장하는 농부 김정열씨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 문 감독 제공 사진 크게보기

문정현 감독이 <바로 지금 여기>에 등장하는 농부 김정열씨를 촬영하고 있는 모습. 문 감독 제공

“여성 농민들은 기계·설비로 농사를 짓기보다 손으로 작물을 재배하며 땅을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사람들이에요. 기후위기로 땅이 변하는 걸 가장 먼저 경험하기 때문이죠.”

두 번째 에피소드 ‘열음지기’를 연출한 문 감독은 30년 간 상주에서 생태주의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온 농부 김정열씨의 삶을 통해 여성 소농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씨는 병충해에 강한 토종 씨앗을 보존하고 손으로 농사를 짓는 여성 농민들과 협력했다. 스마트팜(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한 첨단농장)과 기계로 짓는 농사와는 거리를 뒀다. 스마트팜 역시 온실가스를 만들어낸다는 문제의식이 있어서다.

문 감독은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들은 위기만 선정적으로 부각하다가 금방 시들어버리곤 한다”며 “이 영화로 ‘여성 농민들이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객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 손주가 살아갈 지구니까” 기후 위기에 맞선 청년과 노년의 연대

문정현 감독(오른쪽), 김진열 감독(오른쪽에서 세번째)이 청년 기후 운동가 강은빈씨, 노년 기후 운동가 민윤혜경씨와 다큐멘터리 촬영 중 함께 촬영한 사진. 김 감독 제공 사진 크게보기

문정현 감독(오른쪽), 김진열 감독(오른쪽에서 세번째)이 청년 기후 운동가 강은빈씨, 노년 기후 운동가 민윤혜경씨와 다큐멘터리 촬영 중 함께 촬영한 사진. 김 감독 제공

“노년 기후 운동가가 손주를 돌보는 마음으로 청년들과 연대하는 장면이 많은 걸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에피소드 ‘마주보다’를 연출한 김 감독은 20대 강은빈씨(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와 60대 민윤혜경씨(60+기후행동 활동가)가 기후위기와 싸우는 과정을 담았다. 강씨는 석탄 발전 수출을 추진한 정부·기업에 맞서다 법정 싸움을 하게 됐다. 민윤씨는 손녀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 기후위기를 공부하다 삼척 석탄발전소 반대운동에 뛰어들었고 강씨의 법정 싸움 현장에서 서로를 알게 됐다.

김 감독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영화를 제작하는 내내 고민했다”며 “석탄발전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기후 운동가들과 연대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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