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질투’하고 워홀이 극찬한 작가···뷔페의 세계로 한 발 더 가까이

이영경 기자
베르나르 뷔페 ‘광대의 얼굴(Tete de clown, 1955),’ Huile sur toile, 73x60cm, (C) Bernard Buffet

베르나르 뷔페 ‘광대의 얼굴(Tete de clown, 1955),’ Huile sur toile, 73x60cm, (C) Bernard Buffet

‘비운의 천재’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렸던 프랑스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는 행운아인 동시에 비운아였다. 피카소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루던 프랑스 미술계에서 차가운 외면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2019년에야 뷔페의 회고전이 처음으로 열렸다. 앤디 워홀이 “파리에서 마지막으로 유명한 화가”라고 일컬었던 뷔페의 매력은 대중들을 사로잡았다. 이 생소하지만 뛰어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매료된 관람객들은 ‘n차 관람’을 이어갔고, 15만명의 관람객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뜨거웠던 열기를 이어갈 전시가 찾아온다. 뷔페의 두 번째 대규모 회고전 ‘베르나르 뷔페 전’이 오는 26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단테의 <신곡>을 그린 폭 4m 이상의 대형 유화 작품 등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선보인다. 첫 전시가 뷔페의 작품 세계 전반을 소개하는 전시였다면, 이번엔 뷔페가 평생 동안 천착해 온 주제별로 작품들을 큐레이션해 뷔페의 세계에 한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유화 뿐 아니라 수채화, 판화, 잉크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와 기법을 활용한 뷔페의 작품 120여점을 선보인다.

갤러리 샤르팡티에서 열린 회고전에 자화상을 걸고 있는 베르나르 뷔페(1958). 한솔비비케이 제공

갤러리 샤르팡티에서 열린 회고전에 자화상을 걸고 있는 베르나르 뷔페(1958). 한솔비비케이 제공

베르나르 뷔페 ‘자화상 - Autoportrait 2, 1981, Huile sur toile, 116x81cm (C) Bernard Buffet

베르나르 뷔페 ‘자화상 - Autoportrait 2, 1981, Huile sur toile, 116x81cm (C) Bernard Buffet

■불안한 인물, 우울한 광대

밝음과 어둠으로 세계를 나누자면 뷔페는 어둠 쪽에 서 있는 작가다. 날카로운 직선으로 그려진 짙은 윤곽선의 그림들은 인물을 그리든, 풍경을 그리든 뷔페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삐죽한 직선으로 이뤄진 그의 서명마저도 그림의 일부가 된다. 뷔페가 유년시절을 보낸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불안하고 황폐한 공기가 감돌았다. 17세 되던 해 어머니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뷔페는 몇년 간 다락방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그림만 그리며 지냈다. 아름다우면서 죽음에 가깝고, 불안과 고립이 느껴지는 그의 그림의 특성은 이때부터 형성됐다.

‘천재의 빛’ 섹션에서는 뷔페가 그러낸 인물화를 선보인다. 뷔페는 ‘나’는 무엇이고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실존적 질문에 천착하며 이를 인물화로 그려냈다. 초점 없는 눈동자, 영혼이 증발한 표정, 길쭉하게 늘어난 신체, 뻣뻣한 인물의 표현은 전후 인간의 불안과 피폐함을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뷔페에게 붓질은 불안정했던 자신을 지켜내고자 하는 생존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당대에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스타일의 그림은 대중의 인기를 얻었고, 뷔페의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폭동과 같은 수준이란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장 콕토는 “피카소가 두려워하는 것은 뷔페의 재능뿐이다”라고 말했다.

‘광대의 그림자’ 섹션에서는 뷔페가 오랜 시간 사랑한 주제였던 광대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광대의 얼굴’(1955)은 어두운 푸른색 배경에 우울하고 쓸쓸한 표정의 광대를 그려넣었다. 광대는 전후의 공허·불안·분노·고통을 표현하는 뷔페의 상징이 됐다. 뷔페의 광대 그림은 전쟁의 아픔과 트라우마로부터 회복을 염원하는 프랑스인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힘을 발휘했다. 뷔페는 광대를 반복적으로 그린 이유에 대해 “광대는 온갖 변장과 희화화로 자신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베르나르 뷔페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1976), 캔버스에 유채, 250×430㎝ 한솔비비케이 제공

베르나르 뷔페 ‘단테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1976), 캔버스에 유채, 250×430㎝ 한솔비비케이 제공

베르나르 뷔페, ‘돈 키호테-양떼(Don Quichotte - Les troupeaux de moutons, 1989)’, Lithographie, 78x56cm, (C) Bernard Buffet

베르나르 뷔페, ‘돈 키호테-양떼(Don Quichotte - Les troupeaux de moutons, 1989)’, Lithographie, 78x56cm, (C) Bernard Buffet

■4m 화폭에 담긴 단테의 지옥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나뉘어진 단테의 <신곡>의 한 파트를 뷔페가 그린다면 ‘지옥편’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폭 430㎝의 대형 유화인 ‘단체의 지옥, 지옥에 떨어져 얼음에 갇힌 사람들’은 지옥에서 가장 깊숙한 곳의 얼음 호수에 갇힌 자들의 고통을 차가운 냉기가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단테의 문학, 종교, 신화 속 인물들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그림들을 선보였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역시 뷔페가 즐겨 그린 작품이었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뚜렷한 목표 의식과 확고한 의지가 있었으며,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 이런 점은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룰 때에도 자신만의 구상회화를 고집스럽게 그려나간 뷔페와 닮았다. 뷔페는 평단의 혹평 속에서도 “증오와 비평은 가장 놀라운 선물”이라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굽히지 않았다.

1958년 라르크 성에서 베르나르 뷔페와 아나벨 뷔페. 한솔비비케이 제공

1958년 라르크 성에서 베르나르 뷔페와 아나벨 뷔페. 한솔비비케이 제공

베르나르 뷔페, ‘생트로페, 항구(Saint-Tropez, Le port)’, 1978, Gravure a la pointe seche, 57x76cm, (C) Bernard Buffet

베르나르 뷔페, ‘생트로페, 항구(Saint-Tropez, Le port)’, 1978, Gravure a la pointe seche, 57x76cm, (C) Bernard Buffet

■평생의 뮤즈, 아나벨

뷔페와 40년을 함께했던 아내이자 예술적 동료였던 아나벨을 그린 그림과 아나벨의 책과 음반 표지 등도 볼 수 있다. 아나벨과 뷔페는 서로의 상처와 우울 등을 공감하며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줬다. 뷔페는 가수이자 배우, 작가였던 아나벨의 책과 음반 표지 그림을 그렸고, 아나벨은 뷔페의 전시회를 위한 서문을 써주었다.

뷔페가 여행을 다니며 그린 도시의 풍경들, 파리 뿐 아니라 프랑스 밖의 다른 도시를 그린 풍경들도 볼 수 있다. 199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죽음을 주제로 그린 어두운 그림들도 볼 수 있다.

셀린느 레비 베르나르 뷔페 재단 이사장은 뷔페에 대해 “선구적 천재, 실존의 화가”라고 말한다. 레비 이사장은 “주제별로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 뷔페의 작품세계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유화 뿐 아니라 수채화, 드로잉, 판화 등을 통해 베르나르 뷔페라는 화가가 지닌 재능의 광대함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9월1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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