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2개 대학 의대 증원분의 50∼100% 안에서 2025학년도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지난 19일 지침을 바꿨다. 또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 대화기구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도 출범키로 했다. 두 달여간 이어진 의·정 간 벼랑 끝 대치에 변곡점이 찍힌 것이다. 바로 눈은 의료계로 향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원점 재논의’를 고집하며 특위 참석을 거부했다.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의대 정원 확대에 선 긋는 과도한 직역이기주의가 유감스럽다.
정부의 의대 정원 자율 조정 조치대로라면, 내년 의대 정원은 최대 1000명까지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2026학년도 입시 이후엔 2000명 증원을 고수한 게 새 쟁점이 됐지만, 일단 합리적 증원 규모와 로드맵을 논의할 시간은 벌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대화의 물꼬부터 틀어막았다. 의대 학장들이 참여하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21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동결하고 의료계와의 협의체에서 향후 인력 수급을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내년 의대 정원 확대부터 포기하고, 원점에서 협상해 결론내자는 얘기다. 앞서 의협 비대위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다”라고 했고, 전공의 단체는 행정소송을 예고하며 맞섰다.
의료계의 ‘원점 재논의’ 요구는 독선적이다. 2020년에도 의료계는 ‘원점 재검토’를 관철시켜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을 무산시켰다. 또 의대 정원 문제는 환자·시민사회단체·교육계·산업계가 머리를 맞댈 사회적 대화 의제지만, 의료계는 정부와의 일대일 대화만 요구 중이다. 여당의 총선 참패를 ‘의대 증원·필수의료 정책’ 심판으로 잘못 매김한 데서 보듯, 정부를 한발 더 압박하겠다는 전술이라 볼 수밖에 없다.
의료계는 오해·오판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과 여론은 의대 증원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다만 2000명에 집착해 소통을 거부하고 의료 공백사태에도 강경 대치로만 치닫는 정부에 동의하지 않는 시선도 많아진 것이다. 의료 현장은 경각에 달했고, 이제 25일이 되면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수리 시점을 맞는다. 의료계의 입장 전환이 없으면, 의료체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정부는 ‘숫자 2000명’의 굴레는 풀고 향후 의·정 협의체에서 실효적인 증원 규모·로드맵을 짜기 바란다. 의료계는 국민 인내가 끝나감을 직시하고, 의대 증원을 전제로 한 대화와 의료현장에 하루빨리 복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