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에 여당의 5선 중진 정진석 의원을 임명했다. 이관섭 비서실장이 4·10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지 11일 만이다. 인선 발표가 지연되고 하마평이 무성했지만, 결국 돌고 돌다 친윤 핵심 인사가 기용된 것이다. 대표적 ‘윤핵관’인 정 실장은 윤석열 정부 국정 실패에 책임이 작지 않고 야당 공격에 앞장서기도 했다. 과연 정 실장이 쇄신과 통합을 요구한 총선 민심에 부합하는 인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 실장은 동갑(64)인 윤 대통령과의 관계가 막역하고, 윤 대통령의 정치 입문을 권유하기도 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 뒤 친윤들이 당시 이준석 당대표를 쫓아낸 뒤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심=민심=윤심’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전당대표 룰을 당원투표 100%로 변경했다. 여당을 ‘용산 출장소’로 전락시킨 책임이 크다. 게다가 정 실장은 윤 대통령의 굴욕적 대일 외교를 두고 “제발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고 옹호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선 “그만 좀 우려먹어라. 이제 징글징글하다”는 말로 가슴을 후벼 팠고, 지난해 8월엔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이 부부싸움에서 비롯됐다’는 사자명예훼손으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비서실장은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막중한 자리다. 특히 정 실장 인선은 총선 참패 후 윤 대통령의 첫 인사다. 인적 쇄신의 출발이 ‘윤핵관 비서실장’이라면 국민들이 윤 대통령의 국정 쇄신과 통합 의지를 믿을 수 있겠는가. 대통령의 좁은 인재풀, 아는 사람만 돌려쓰는 회전문 인사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윤 대통령이 지난 2년처럼 자기 고집대로 국정운영을 하려는 건지 심히 우려케 한다.
정 실장은 경제관료 출신인 전임 비서실장들과 달리 첫 정치인 출신이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이명박 청와대 정무수석과 21대 국회부의장도 지냈다. 윤 대통령은 그의 정무 능력을 높이 산 듯하다. 정 실장은 임명 소감으로 “윤 대통령이 더 소통하고 통합의 정치를 이끌도록 보좌하겠다” “오직 국민의 눈높이에서 객관적 관점으로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정 실장은 이 말을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난맥에서 대통령 책임이 큰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정 실장은 윤 대통령에게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쓴소리도 해서 엇나가지 않도록 제어해야 한다. 반복되는 비선인사 논란에서 보듯 무너진 대통령실 기강을 바로잡고 시스템도 정비해야 한다. 그게 비서실장으로서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