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첫 겨울방학, 상경 후에 낯선 타지에서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장애가 있어 어디서도 나를 안 쓸 줄 알면서도, 하염없이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며칠간 알바 사이트에 ‘장애인’이라 검색하다 작은 카페의 구직 공고를 발견했다. 출근길 직장인을 대상으로 자리에 앉아 커피를 파는 일이었다.
똑똑똑. 가게 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사장님께 준비한 이력서를 들이밀었다. 인쇄물을 훑어보던 그는 “주문 들어오면 먼저 계산하고 앉아서 커피를 내려 건네주면 돼” 하고 처음 말했다. 그의 긍정적 신호에 기분이 벅차올라 “네!”라고 대답했다.
“시급 3500원 어때?” 그가 이어서 말했다. “네? 최저시급은 4580원인데 왜 3500원인가요?” 그는 내 물음에 답했다. “아. 몰랐구나. 장애인은 법적으로 최저임금 안 줘도 돼.” 무슨 무슨 법을 인용하는 그의 능숙한 말에 대들 수 없어 두 눈만 끔벅였다. “네…”하고 풀 죽어 대답하는 사이, 그는 나에게 다른 요일에 알바할 사람 더 없을지 물었다. 나는 그에게 “3500원이면 아마 없을 텐데요”하고 말했다. 그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걱정 마. 데려오는 친구가 장애인 아니면 당연히 최저임금 줘야지.” 서러움에 북받쳐 묵묵히 고개 숙인 채로 눈물을 꾹 참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오늘날, 최저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된 최저임금법은 역설적으로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될 사람들을 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을 정한다고 설명을 덧붙이지만, 법을 잘 모르는 노동자들은 긴긴 행정 절차를 알 도리가 없다. 장애인, 경비 아저씨, 수습노동자. 합법적으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게 된 이들 모두 자신을 탓하며 최저 이하의 삶을 버텨왔다.
지금 정부·여당은 최저임금의 울타리에서 쫓겨난 국민을 품으려는 노력 대신에 더 많은 시민을 사회안전망 밖으로 내모는 데 혈안이다. 1년 전, 100만원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수입하자는 조정훈 의원과 오세훈 시장의 계획을 시작으로, 외국인 유학생 및 결혼이민자 가족의 최저임금 미만 취업을 허용하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제안이 더해졌다. 게다가 지난 2월 윤기섭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등 38명은 노인 일자리 보장을 위해 최저임금을 주지 말자는 ‘노인 일자리 활성화를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발의했다.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야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가 횡행한다.
장애인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수습직원으로, 가사노동자로, 외국인유학생으로, 결혼이민자로, 노인으로. 지금의 노동 정책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최저임금을 빼앗자는 내용뿐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이 위협받고 있다. 누구라도 ‘최저임금 차등 적용’ 대상이 되는 순간 나머지 시민의 삶 모두 위태로워진다.
정부의 폭거를 막을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왜곡된 ‘자유시장경제’ 레토릭에 저항할 힘, ‘가장 약한 자가 가장 먼저 쫓겨난다’는 현실을 자각하는 힘, 장애인, 경비원, 외국인, 노인의 탈락이 곧 자신의 탈락임을 감각하는 힘. 우리가 우리를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