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서울 사람이 생각하는 시골’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지도가 있다. 한반도는 절반 남짓 그렸는데, 서울은 빨간색으로 크게 그렸다. 휴전선 이북 조금은 북한이고, 남쪽에서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시골이라고 퉁쳐버리며 모두 파랗게 색칠을 했다. 그래도 제주도는 귤이요,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표시했는데, 이 엉성한 와중에도 독도 옆에는 울릉도도 표현되어 있는, 제 딴에는 섬세한(?) 지도다. 보통 지도의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정확성 따위는 무시한 이런 지도도 분석의 가치가 있다. 이런 것을 심상지도(Mental map)라고 하는데, 그린 이의 심상을 반영한다.
이 지도는 북한에 대한 무관심이나 독도 문제에 대한 강렬한 인식 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서울 사람들이 얼마나 서울 중심으로 사고하는지를 보여준다. 전자가 무심결에 드러난 심상이라면 후자인 서울 중심 사고는 이 지도가 그려진 이유다. 서울 사람이 얼마나 오만하게 서울 중심의 사고를 하는지, 그들이 견문으로 아는 세상이 얼마나 편협한지 풍자한 것이다.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7조는 인간의 이런 좁은 견문과 관련되어 있다. “내가 살아봤다고 그 시대를 다 아는 게 아니다”가 바로 이것이다.
얼마 전 ‘1990년대 해외여행 자율화로 대학생 사이에 배낭여행, 어학연수 등이 보편화됐다’고 글을 쓰려다 멈칫한 적이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보편화’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경험적으로 따져만 봐도 내 고등학교 친구들의 어학연수 비율과 대학교 동기들의 어학연수 비율, 해외 배낭여행 비율이 상당히 차이가 났다. 여기에는 당시까지만 해도 군미필자의 출국이 까다롭던 상황이라든가 집안의 분위기, 경제적 상황 등이 작용했다. 문호가 열리면서 그 이전에 비하면 해외 경험을 한 사람들이 괄목할 정도로 늘기는 했지만, 대학생 중에서도 다수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거기에 당시 대학 진학률이 20%대였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꼴랑 대학생 일부의 경험을 가지고 그 시대의 보편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이를 깨달으며 조용히 문장을 다시 다듬었다.
한국사를 공부하신 어떤 교수님은 하필 5·18민주화항쟁이 일어난 바로 그때 광주 인근에서 장교 교육을 받으셨다고 했다. 한창 교육 중에 부대가 술렁술렁하더니 ‘폭도들’이 실려 왔다고 한다. 연병장에 떨궈진 ‘폭도들’에 대한 구타가 난무하고,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들이 무장을 했고 어쩌고저쩌고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도 분노와 적대감이 치솟아 올랐다고 했다. 자기 부대가 투입이라도 될까봐 무서웠다고도 하셨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으면, 5·18은 그때 보고 들은 이야기가 다인 줄 알았겠지”라고.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의 한계가 이런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폭은 매우 좁다. 다녀본 데도 얼마 없고, 만나는 사람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여행도 하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으면 견문이 넓어진다? 그것도 사람 나름이다. 받아들이는 그릇이 유연하고 커야 견문도 확장되는 법이다. 그릇이 작은데, 거기에 뭘 부어봤자 넘치기나 하지 별 소용이 없다. 역사학 공부는 일단 당대 수많은 사실들이 나름의 ‘진정성’을 가지고 경쟁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하다못해 부부싸움도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고 하는데, 역사학은 안 그렇겠는가? 그 사실들을 저울질하며 전체 판도와 흐름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 역사학 공부다. 그런 공부를 통해, 한 시대를 산 사람들의 개별 경험을 존중하지만, 그 시대의 전체적인 상은 개인의 경험을 초월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역사학이다. 항상 자기 경험이 협소할 수밖에 없음을 겸허히 통찰하며, 다른 이의 경험을 존중하는 것,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공감은 여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