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푸른 날이다. 자연이 고마운 나날이다. 이렇게 고마움을 제공하는 신록의 뒷면에는 이런 슬픈 이야기도 숨어 있다고 한다. 로마의 이야기꾼 오비디우스의 이야기다. 어느 날, 아폴로는 다프네를 마주치게 된다. 황금 화살을 맞은 아폴로는 사랑의 화염으로 불타오른다. 납 화살을 맞은 다프네는 아폴로의 사랑을 피해 달아난다.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쪽에서는 좋은데, 저쪽에서 싫어하는 상황을 말이다. 이런 상황에 처할수록, 덤벼드는 마음은 더욱 불타오르고 도망치는 사람의 마음은 더욱 얼어붙는다. 아폴로는 손가락, 어깨, 하얀 팔에 감탄하고,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얼마나 아름다울까를 상상하면서 다프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다프네는 바람보다 더 빠르게 도망쳤다. 다프네를 쫓는 아폴로의 말이다.
“모든 약초들의 효력이 나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지만, 아아, 사랑을 치료해 줄 약초는 어디에도 없구나. 세상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나의 의술도 그 주인인 나에게는 쓸모가 없구나.”(<변신이야기> 제1권, 523~524행)
아폴로의 구애는 과연 성공했을까? 실패했다. 아폴로가 다프네를 잡으려는 순간, 다프네의 발은 뿌리, 몸은 줄기, 손은 가지, 머리카락은 잎으로 변해버렸기에. 이렇게 변한 나무가 월계수이다. 구애에는 실패했지만, 아폴로는 월계수로 변신한 다프네에게 사랑의 표시로 푸르름을 선물한다. 월계수가 항상 푸르게 된 것도 이런 슬픈 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아폴로와 다프네의 사랑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아폴로는 태양의 신이고, 다프네는 새벽의 여신이었다. 태양이 새벽을 잡으려는 순간, 아침이 밝아버리기에.
사실, 아폴로와 다프네의 이야기는 우주의 운동 원리를 설명하는 고사(古事)이다. 밤에 잠들지 못하도록 아폴로로 하여금 다프네를 열심히 추격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눈으로 즐기는 푸르름이 다프네에 대한 아폴로의 사랑 표시이고, 우리가 마음으로 누리는 푸르름이 아폴로와 다프네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승화(昇華)이기에, 푸르름이 더욱 새롭고 더욱 고맙게 다가오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