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자원 향한 새로운 도전

‘해저 2만리’ 지질도 그리기…해양 주권 보호 위한 마중물

김병엽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저지질에너지연구본부장

노르웨이에서 발견된 인류의 가장 오래된 배, 즉 ‘페세 카누’는 적어도 인류가 기원전 8000년 즈음부터 항해를 했음을 말해준다. 어떤 이는 현생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전인 약 80만년 전, 호모에렉투스부터 인위적인 항해를 통해 바다 건너 섬으로 이동했다고 추정한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적 종이 되는 데는 항해 능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주경철 저, <바다 인류> 중)’라는 분석이 있을 만큼 바다는 인류가 끊임없이 도전하고 이용해온 대상이다. 그렇다면 바다 밑은 어떨까. 인지 혁명을 통해 모든 종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인류가 바다 아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을 리 없다.

‘범선 시대’가 끝나갈 무렵 마침내 한 인류가 물로 덮인 바다 밑바닥을 직접 조사했다. 1872년 영국 과학자 찰스 와이빌 톰슨은 목선(木船)인 HMS 챌린저호를 이끌고 4년 동안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을 거쳐 무려 13만㎞를 항해했다.

그러면서 세계 최초로 해저 지형과 해양 생물, 수온과 해류를 조사했다. 수심은 밧줄에 납을 달아 쟀는데 북태평양 서쪽에서는 무려 8184m까지 수심을 측정했다. 여기가 바로 지구상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최대 수심 1만1034m)’이었다.

챌린저호의 업적은 현대 해양학의 기초가 됐다. 이후 위성항법시스템(GPS)을 이용한 항해 기술과 해양 탐사 기술 발전에 힘입어 세계 각 나라에서 자국의 영토 관리와 산업화를 위해 해저 지형과 지질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해저 지질도는 항해와 어업의 기본 정보인 수심도 외에 광물이나 골재와 같은 자원 분포, 해양 개발을 위한 지질 정보, 해저 지질 재해 예측과 해군 방어체계 구축을 위한 과학자료 등을 제공한다.

이 때문에 고품질 해저 지질도의 구축 여부가 곧 해양 지배력에 대한 가늠자 역할을 한다. 미국(usSEABED), 영국(MAREMAP), 일본 및 세계수심도위원회(SEABED2030) 등이 각자의 대형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은 1975년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소속의 국립지질광물연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가 서산-군산 해역을 대상으로 한 해저 지질도 제1집을 발간했다. 그 뒤 40년 만에 한국 관할 해역 전역에 걸친 ‘1:25만 축척’의 해저 지질도가 완성됐다. 단순한 지형도뿐만 아니라 퇴적층 두께, 퇴적물 종류, 중력과 자력 특성 등 다양한 물리·화학적 성질에 따른 주제도를 만들어 정부와 민간이 원하는 목적에 따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2016년부터는 산업·사회적으로 활용도가 더 높은 1:10만 축적의 연안 해저 지질도 제작에 돌입했다. 여기에는 여러 첨단기술이 활용된다. 고해상 3차원(3D) 지형과 지질 구조를 물리탐사 전용 연구선을 통해 얻게 된다. 해저 시료는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분석된다. 기계학습 기술을 이용해 품질이 낮은 자료만 있는 해역의 지질정보도 디지털화할 계획이다.

한국 해양영토라 할 수 있는 직접적인 관할 해역은 남한 면적의 4.4배 정도다. 주변국들에 비해서는 턱없이 좁다. 이마저 일부 주변국과의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해저 영토에 대한 빈틈없는 조사와 지질도 구축은 해양 영토를 지키는 데 있어서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한국의 뛰어난 해저 지질도 제작 기술이 우리 해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대양에도 활용돼 해양 영토를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김병엽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저지질에너지연구본부장

김병엽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저지질에너지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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