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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증언자②] 1989년 전옥주도, 1996년 비구니 피해자도 말했다…협박·외면 딛고 44년 만에 ‘사실’이 된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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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증언자②] 1989년 전옥주도, 1996년 비구니 피해자도 말했다…협박·외면 딛고 44년 만에 ‘사실’이 된 피해

입력 2024.05.13 06:00

수정 2024.05.1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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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44년 만에 말하는 이유

“검사도 그런 일을 당했다는데 나도 이제 말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5·18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신고한 많은 피해자들은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로 용기를 낸 이는 김선옥씨였다. 그해 김씨는 1980년 5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대에 붙잡혀 고문을 받았고 석방 전 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공개 증언했다. 서 검사의 ‘미투’에 이어, 김씨의 증언, 그리고 용기는 이어졌다. 정부 조사단과 ‘5·18 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에 피해 신고를 하고 조사에 응한 이들은 19명으로 늘었다.

1988~89년 전옥주, 청문회 공개 증언

김선옥씨의 공개 증언이 처음은 아니었다. 전옥주씨는 1988년 민주화합추진위원회(이하 민화위)와 1989년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연행 이후 모진 성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전씨는 5·18 당시 광주에 우연히 방문했다 참상을 본 뒤 가두방송에 참여했고 시민들이 힘을 합칠 수 있게 구심점 역할을 한 여성이다. 그는 민화위에서 5·18 당시 광주 부시장 정시채가 ‘5·18 때 죽은 사람은 대여섯 명밖에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는 직접 나가 증언하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청문회에서도 피해 사실을 알렸다.

1980년 5월 가두방송 중인 전옥주씨가 사진 속 동그라미 안에 보인다(왼쪽 사진). 전씨가 1989년 2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1980년 5월 가두방송 중인 전옥주씨가 사진 속 동그라미 안에 보인다(왼쪽 사진). 전씨가 1989년 2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이후 오랫동안 전씨는 다시 침묵한다. 그가 1996년 <신동아>에 기고한 수기에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공개 증언 이후 테러가 있었다고 밝혔다. 집에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또 다시 그런 얘기를 하면 너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협박받은 사실을 알리는 것조차 8년이 걸렸는데, 피해 사실 자체를 드러낼 수 있는 피해자가 있었을까. 전씨는 조사위 조사 기간인 2021년 진상규명 결정조차 보지 못하고 사망했다.

1996년 비구니 피해자, 검찰 조사
“가해자 꼭 처벌해달라” 요청

사실 전씨는 혼자가 아니었다. 전씨가 국회 청문회에서 증언하려던 그때, 또 다른 피해자도 증언을 준비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19일 학교에서 귀가 중이던 이 피해자는 군인 트럭에 납치돼 1시간 정도 떨어진 야산에서 강간당했다. 사건 이후 피해자는 나주 정신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고, 1988년 무렵 불교에 귀의해 비구니가 됐다. 피해자의 오빠는 1989년 2월 국회 5·18 광주 청문회를 앞두고 5·18민주항쟁부상자동지회 초대 회장 이지현을 찾아가 “청문회에서 동생의 사연을 공개해 동생과 어머니의 한을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이 회장은 피해자를 찾아가 피해 사실에 대해 듣고 청문회 증언 자료를 준비했지만 야당 국회의원 등 관련자들은 오히려 만류하고 나섰다. ‘쟁점 사안이 아니니 진상규명을 위해 시급한 것부터 하자, 아무리 흉악한 놈들이라도 그렇게까지 했겠느냐, 너무 끔찍해서 믿어줄 것 같지 않다’는 등의 이유였다. 끝내 이 회장은 증언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이 피해자는 ‘5·18 특별법’이 제정된 뒤 1996년 1월 검찰조사에서 성폭력 피해 진술을 했다. 그는 가해자를 꼭 처벌해달라고 했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현재 알츠하이머 투병 중으로 추가 진술이 어려운 상태다.

2018년 김선옥, ‘38년만의 미투’

그로부터 22년 뒤 김선옥씨가 ‘미투’를 하면서 끊길뻔한 피해자의 목소리는 다시 메아리가 돼 돌아왔다. 80년대 후반 전옥주씨가 공개 증언을 할 당시만 해도 5·18의 역사적 재평가조차 이뤄지지 못한 시점이었다. 공공연히 광주 시민을 ‘폭도’ ‘빨갱이’라 부르던 때였다. 1997년 5·18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는 등 명예회복이 본격화됐지만 이번에는 성폭력에 대한 가부장적 편견이 발목을 잡았다. 피해자들은 ‘성폭력 피해자’라는 낙인이 두려워 말하지 못했다. 김선옥씨도 2018년 이전 5·18 기념재단에서 가두방송에 대해 구술하면서 성폭력 피해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귀담아듣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술회했다.

5·18 관련자들의 명예회복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2000년대에 들어서도 성폭력 피해는 여전히 수면 아래 잠겨 있었다. 성폭력 진상규명은 1980년 이후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난해에야 이뤄질 수 있었다. 김선옥씨는 조사위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가 5·18에 대해 남은 빚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까지 하고 죽으면 되겠다는 심정으로 용기를 내었던 것입니다.” 윤경회 조사위 조사4과 3팀장은 “5·18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말하기까지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40여년 만의 ‘듣기’ 이후 조사위는 드디어 16명의 피해자에게 “당신의 피해가 사실”이라는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한 이남순씨(67)와 정현순씨(69)를 지난 1일, 7일 인터뷰했다. 이씨는 먼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제 말을 해도 되겠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정씨는 “아직 아무렇지 않다며 의식까지 해방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가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국가가 진상규명 결정을 내리는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고 했지만 그 결정을 듣고 나자 “편해졌다”고 했다.

5·18 성폭력 피해자들은 앞으로 ‘열매’라는 이름의 자조모임을 통해 활동할 계획이다. 윤 팀장은 “44년이라는 시간 안에 피해자들의 중요 발언, 참여가 하나의 흐름이었다가 바닷물처럼 여기까지 모여든 것”이라며 “진상규명 이후의 남은 숙제들을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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