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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칼럼]겸손은 힘들다

* <삼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된 류츠신의 SF소설 <삼체>에서 인류는 두 번의 오판을 저지른다.

첫 번째는 외계 문명인 삼체의 침략에 맞설 때였다. 삼체인(외계인)이 지구의 방사광가속기를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물리학 발전이 중단됐지만, 인류는 노력 끝에 2000대의 우주전함을 만들어냈다. 이 정도면 그들을 격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삼체인의 과학은 인류가 상상할 수 없는 높은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그들이 보낸 단 두 개의 ‘물방울’에 속절없이 당한다.

두 번째도 미지의 외계 세계로부터 올 공격을 대비하던 때였다. 인류는 그들이 다른 행성계를 공격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항성, 곧 태양을 노릴 것이라 예상한다. 인류는 태양 폭발을 대비해 목성 뒤편으로 거주지를 이전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고 봤다. 그러나 외계 문명은 공간을 2차원으로 축소시키는 예상치 못했던 공격을 한다. 인류는 멸망한다.

“생존을 가로막는 건 무능과 무지가 아니라 오만이다.” 인류의 멸망 순간을 무심한 듯 써내려간 작가의 서술을 읽으면서 오늘날 우리의 ‘오만’에 대해 생각한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 역시 ‘이만하면 됐다’는 오만에서 나온 건 아닐까.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100%(RE100) 열풍이 불고 있는데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여전히 흘러간 옛 노래처럼 원전을 외친다. 이것은 오만인가, 아니면 무능과 무지인가.

소설에는 삼체의 공격에 앞서 인류의 오만을 걱정하는 물리학자가 나온다. 동면 기술로 200년이 넘는 시대에 걸쳐 살 수 있었던 그는 한탄한다. “난 200년 전 사람이오. 그런 내가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쳤단 말이야.”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현대물리학 강의를 하는 꼴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걱정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학자는 부끄러움이라도 알았지만, 고작 10여년 전 이미 이전 정권에서 실패가 검증된 현 정부의 ‘올드보이’들은 자신감마저 넘친다.

어느새 한국에서 오만은 트렌드가 됐다. 윤 대통령이 사과를 개한테 줬을 때 이미 그랬던 것 같다. 온 사회가 잘못했다고 말하면 지는, 그런 게임 속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상대방의 잘못을 헤집으며 관심을 돌린다. 합계출산율 0.72명으로 공동체가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자는 말보다 상대방을 심판하겠다는 목소리만 가득하다.

‘겸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홍세화 선생은 병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묻는 김민섭 작가에게 이 한 마디를 써서 남겼다. 겸손은 내가 틀렸음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이기도 하다. “스스로 미완의 존재임을 의지로 붙들어야만 해요. (중략) 자신의 잘못된 점, 부족한 점에 대한 부단한 성찰을 통해 수정하거나 보충해가는 그런 긴장을 유지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김 작가가 소개한 홍 선생의 대담집 일부다.

홍 선생조차 ‘의지’로 가능했을 만큼, 겸손은 정말 힘들다. 문제는 <삼체>에서도 보듯 겸손이 그저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는 점이다.

황경상 데이터저널리즘팀장

황경상 데이터저널리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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