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정지 가처분 인용 결정문 11건 분석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공정성·객관성’을 문제 삼아 정권비판 보도 44건을 법정제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방송사가 제재에 불복해 법원에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11건이 모두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14일 경향신문 취재와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 임기가 시작된 2022년 5월9일부터 지날달 30일까지 방심위가 의결한 법정제재는 총 44건이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이 요구한 공정성과 객관성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보도들이다. 최고 수위인 과징금 부과가 7건, 관계자 징계 3건, 경고 7건, 주의 27건 등이다.
방심위의 법정제재는 류희림 위원장 체제에서 크게 늘었다. 윤 정권 출범부터 정연주 전 위원장이 해임된 지난해 8월17일까지 방심위가 내린 법정제재는 총 4건이었다. 그런데 류 위원장이 취임한 지난해 9월8일부터 지난달 30일 사이 총 40건이 의결됐다. 정 전 위원장 때 넉 달에 한 번 꼴이던 법정제재가 류 위원장 체제 들어 한 달에 5.5건로 나온 것이다.
방송사들은 44건 중 11건에 대해 ‘제재조치 및 과징금부과 처분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제기했다.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모두 받아들여 제재 집행을 정지시켰다. 제재조치 취소 등 본 소송은 아직 한 건도 심문이 진행되지 않았다.
정권비판 보도 줄줄이 법정제재, 재판부 ‘우려’
법원이 인용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 결정문을 보면 재판부는 법정제재 조치로 방송사가 입게 될 손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처분으로 인해 신청인(방송사)에게 발생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처분 효력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며 “효력정지로 인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런 판단은 모든 사건에서 거의 동일했다.
재판부 결정이 비슷한 건 방심위가 동일한 사안과 보도 유형에 법정제재를 했기 때문이다. 류 위원장은 방심위원 시절 방심위 전체회의에서 뉴스타파의 김만배씨 인터뷰 보도를 비판하며 “방심위의 명운을 걸고 심의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방심위는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를 줄줄이 법정제재했다. 집행정지 신청이 제기된 11건 중 6건이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만배-신학림 녹취’를 인용하거나 분석한 기사였다.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 불허 문제, 윤 대통령의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수사무마 의혹 등과 같은 정권비판 유형의 보도에 내려진 징계에 대해서도 법원은 “처분 효력을 정지할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심의제재 조치를 법원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집행정지 가처분이 줄줄이 인용된 것은 방심위가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제4기 방심위원을 지낸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교수는 “방심위원들이 가진 권한의 전제는 숙의를 통해 결정하라는 것”이라며 “집행정지 가처분 전부 인용은 방심위원들이 재량권을 무한히 행사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는 권한 남용”이라고 말했다.
‘숙의’보단 ‘분란’ 방심위…“언론탄압 앞장서”
방심위는 숙의보다는 분란을 키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류 위원장의 가족·지인이 ‘김만배-신학림 뉴스타파 인터뷰’ 보도 심의 요청 민원을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거진 이른바 ‘청부 민원’ 의혹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위원들이 해촉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유진 방심위원은 해촉 처분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업무에 복귀했지만, 옥시찬 방심위원은 가처분 신청이 기각돼 돌아오지 못했다.
현재 방심위는 여권 추천 위원 6명과 야권 추천 위원 2명으로 구성돼있다. 위원 1명은 결원이다. 김준희 방심위 노조지부장은 “류 위원장 부임 이후 방심위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되고 대화보다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관행이 심해졌다”며 “언론자유를 탄압·말살하는데 방심위가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류 위원장은 ‘정치 심의’라는 비판에 “모든 위원이 법에 따라 공정하고 정당한 심의를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는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고민정 의원은 “방심위 제재에 대한 법원의 제동은 방심위가 정권 심기 경호를 위한 불공정 편파심의를 남발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언론의 합리적 비판조차 옥죄려는 언론장악 시도를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된 11건 중 8건에 불복해 항고했다. 그중 1건인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을 다룬 보도에 대해 법원은 항고심에서도 방송사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