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제유가 연간 6%·반도체 가격 37% 상승’ 가정해 분석
전문가들 “고용 유발 제한적, 낙수효과 의문…민생 지원 필요”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국민들의 실질구매력이 늘면서 민간소비가 개선될 것이라는 국책연구원의 분석이 나왔다. 연구원은 향후 경기 회복 흐름을 감안하면 재정을 푸는 경기 부양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정책에 우회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3일에 낸 ‘고물가와 소비 부진, 소득과 소비의 상대가격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보면 2022년과 지난해에는 국제유가 상승과 반도체 가격 하락이 실질구매력 상승을 가로막았다.
세부적으로 보면, 2022년 이후 소비자물가는 연평균 3.9% 상승한 반면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실질GDP 대비 명목GDP·소득물가)는 1.7% 오르는 데 그쳤다. 국제유가 급등과 반도체 가격 하락 여파로 소비 대비 소득의 상대가격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3.0%와 1.3% 하락했고, 이는 지난해 실질구매력을 3.6% 끌어내렸다.
KDI는 “실질 민간소비가 부진한 원인 중 하나는 상대가격의 하락, 즉 소득보다 소비재 가격이 빠르게 상승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며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는 가운데 소비자물가가 빠르게 상승해 실질구매력 증가율이 정체되면서 실질소비에 악영향을 줬고, 고금리가 유지되면서 실질소비 부진이 심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부터는 상대가격 흐름이 오름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국제유가가 연간 6% 상승하고 반도체 가격이 37% 상승할 것으로 가정해 분석했더니, 2022~2023년 이어졌던 급격한 상대가격 하락 추세가 완만한 상승 추세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반도체 가격이 올라가면 소득은 늘어난다”며 “반도체 가격이 소비자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소득이 커지면 소비 여력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KDI는 이 같은 경제 회복 추세를 고려할 때 민간소비 부양을 위한 단기적인 거시정책은 필요치 않다고 제언했다. 정 실장은 “민생회복지원금이나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시행하면 내수 부양에 효과가 있겠지만 지금 그것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며 “지금 내수 부양을 하면 다시 고물가로 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반도체 분야가 회복된다 해도 실제 내수 회복 같은 낙수효과가 발생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며 “심각한 중소기업 연체율과 자영업자 폐업률을 고려하면 꼭 민생회복지원금이 아니더라도 민생 지원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특수’에 대한 KDI의 기대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원준 경북대 교수(경제학)는 “반도체 분야는 고용 유발 효과가 제한적인 데다 산업 연관 효과가 취약하기 때문에 반도체 회복을 근거로 내수가 회복된다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이라며 “최근 경기가 좋아졌다 해도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크게 나아진 게 없고 향후 경기 향방도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