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이 14일 전날 단행된 검찰 고위급 인사와 관련해 “인사는 인사이고 수사는 수사”라며 “검찰총장으로서 제게 주어진 소명과 책무를 다하겠다”고 했다. 이 총장은 그러면서 “어느 검사장이 오더라도 수사팀과 뜻을 모아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했다. 사전에 조율된 인사였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는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 “제가 알 수 없는 문제다”라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를 통해 송경호 지검장 등 서울중앙지검의 김건희 여사 수사 지휘라인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그 수사를 총괄할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에 윤석열 대통령 측근인 이창수 전주지검장을 앉혔다. 이 총장이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사건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한 지 11일 만에 단행한 인사였다. 이 총장의 참모인 대검 부장들도 반부패부장과 감찰부장만 빼고 교체했다. 이번 인사는 이 총장이 지방검찰청 순시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전격 단행됐다. “김 여사 방탄용 인사” “이 총장 나가라는 신호”라는 말이 나왔고, 이 총장이 사의를 표명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으나 일단 선을 그은 것이다.
이 총장은 김 여사에 대해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했지만 수족이 다 잘리고 대검 중수부 같은 직할팀도 없는 이 총장이 그것을 관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인 방안은 수사지휘권을 활용해 김 여사 수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물론 법무부나 서울중앙지검 지휘부와의 갈등도 마다하지 않는 강단과 결기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이 총장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이 총장은 현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를 지휘할 권한이 없다. 문재인 정부 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김 여사의 특수관계인인 윤석열 당시 총장의 도이터모터스 사건 수사지휘를 배제했는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이 조치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은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지휘권을 복원해 줄 것을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공식 요청할 필요가 있다. 김 여사 수사는 이 총장이 엄정하게 지휘·감독하고, 수사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최선이다. 윤석열 정권의 친위부대라는 오명을 조금이나마 씻어내고 최소한의 수사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검찰의 생존을 도모하는 길임을 이 총장도 잘 알 것이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김건희 특검’의 당위성과 명분은 더 커졌다. 수사는 내용의 공정성 못지않게 외관의 공정성도 중요하다. 김 여사 수사를 막겠다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 인사를 해놓고,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은들 사람들이 믿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