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갈등이 장기화하며 세계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던 의료체계 전반이 허물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 안대로 의사 증원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타 많은 문제들의 해결은 도외시하며 압박과 통제 일변도의 드라이브로 의사집단 전체의 반발과 사기 저하를 초래하면서 문제 해결이 더욱 요원해지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일이 일선 학교 현장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올해 교육부의 훈령 개정으로 ‘교수학습평가계획’의 양식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이에 대한 교육(지원)청 등의 컨설팅(?)이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간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게 수많은 행정업무를 부과하긴 했어도 교권의 본질인 수업과 평가까지 간섭과 통제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선을 넘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 용인의 한 중학교 연구부장은 양식 변경과 컨설팅을 반영하니 13과목밖에 안 되는 평가계획 문서가 무려 500여쪽에 이른다는 자조 섞인 푸념을 한다. 번문욕례 사례다. 다른 지역의 한 교사는 ‘적확’이란 말도 몰라 ‘정확’으로 고치라는 컨설팅단의 전문성이 의심스럽다며 누가 점검했느냐에 따라 컨설팅 결과가 다 다른데 따라야 하느냐고 호소한다. 다른 교사는 수업과 평가의 세부 사항까지 통제받고 강요당하는 교권 훼손의 모멸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사실 교사가 이렇게 과도한 서류작업을 강요받으면 정작 학습지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줄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더구나 성취기준을 건건이 ‘문자 그대로’ 적용하게 하는 처사는 사안을 크게 보는 통찰과 다른 과목과의 융합 등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사교육도 조장한다. 문서에 과도한 정보를 담아 공개하게 하면 그걸 바탕으로 정보를 얻은 학원의 대비를 받은 학생이 매우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새롭고 창의적인 교육활동보다는 민원 방지와 통제, 그리고 문서적 완결성을 추구하는 관료주의적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러한 상황에 현재 교사들은 의사들처럼 적극적인 저항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작년 서이초 사건 등을 통해 이미 사기가 저하될 대로 저하된 상황이라 그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해주고, 대신 교육에 두던 관심을 퇴직 준비나 퇴직 이후에 쏟기 시작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간 정부 및 관료 주도의 발전국가 모델이 한국 사회의 초고속 성장에 많은 기여를 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문턱을 넘은 지금 그러한 상명하복의 지시와 통제 중심의 모델은 수명을 다했음도 분명하다. 정부나 관료가 사안을 모두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사회의 복잡성이 증대했을 뿐 아니라 양 외에 질까지 담보하려면 일선의 자율성과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사이 올해부터 2026년까지 ‘교실혁명 선도교사’ 3만4000명을 양성하겠다는 교육부의 홍보 포스터가 내려왔다. 여타 많은 문제들의 해결은 도외시하며 교사에 대한 압박과 동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관료주의의 전형으로 의대 2000명 증원과 비슷한 결이다. ‘학교당 2~3명’ 숫자를 찍어 톱다운 방식으로 할당하여 선도교사 모집을 밀어붙이면, 게다가 합의되거나 검증된 바 없는 디지털 수업 방식으로 획일적으로 밀어붙이면, 새 시대에 맞게 “교사의 주도성과 전문성이 살아”나고 “수업과 평가가 혁신”되는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그 발상이 무섭다.
이런 홍위병 양성식 톱다운을 통해 과연 선진국형 교육 시스템 마련이 가능한가? 도리어 무모한 접근으로 의료 부문에 이어 교육 부문마저 형해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