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상남자

정유진 논설위원

‘상남자’의 정확한 어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남자’ 앞에 본보기를 뜻하는 한자인 ‘모양 상(像)’을 붙인 것이라는 설도 있고, ‘위 상(上)’자를 접두사로 쓴 것이란 설도 있다. ‘천생 남자’의 사투리 발음인 ‘천상 남자’가 상남자로 변한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진짜 어원이 무엇이든지 간에, 상남자가 ‘남자 중의 남자’ ‘진짜 사나이’를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상남자를 아직도 최고의 칭찬으로만 알고 있다면, 오산이다.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그냥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시대에, 상남자라는 단어는 이제 다소 희화화되기까지 한다. 지나치게 허세를 부리거나 앞뒤 없는 막무가내식 행동을 하는 사람, 자신의 안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모한 일을 일삼는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기 위한 ‘드립’(사물이나 현상을 즉흥적이고 재밌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건을 배달하러 온 사람이 현관문이 잠겨 있자 발로 유리를 깨부수고 그 안으로 물건을 툭 던져놓고 가는 해외 토픽 영상에는 “상남자네”라는 댓글이 달린다. 난폭운전으로 옆 차들을 위협하다가 혼자 폭주해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해외 영상 제목도 ‘상남자’다. 한때 인터넷에서는 재미 삼아 해보는 ‘상남자 테스트’가 유행했다. 거기에 나온 상남자 특징들이 ‘겨울에는 찬물, 여름에는 끓는 물로 샤워함’ ‘카드 안 쓰고 현금만 씀’ ‘휴대폰은 한번 쓰고 부숴버림’ ‘밥상에 고기 없으면 안 먹음’ 등이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두둔하려고 느닷없이 상남자를 언급해 논란이 되고 있다. 홍 시장은 김건희 여사 수사 지휘부가 대거 교체된 데 따른 비판이 커지자,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자기 여자 하나 보호 못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겠나. 그건 방탄이 아니라 최소한의 상남자의 도리”라고 썼다. 그러나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은 상남자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무가내식 행동을 하는 ‘상남자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대통령다운 대통령’이다.

홍준표 대구시장.  연합뉴스.

홍준표 대구시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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