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교차로 한복판에 서더라도 무조건 멈춰야’ 판결에 와글
“추돌 위험” vs “감속 환기”…전문가들 “명확한 법 규정 필요”
대법원이 지난 13일 교차로 진입 직전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었는데도 주행한 운전자에게 ‘신호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자 일부 시민들로부터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대법원 논리를 따르자면 교차로 진입 직전 켜진 노란불에 맞춰 정지하려다가 교차로 한복판에 멈춰 서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반면 노란불은 속도를 낮추라는 뜻이지 속도를 높여 빨리 지나가라는 뜻이 아니라는 걸 환기해준 판결이라며 당연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택시 운전 경력 10년인 김종현씨(51)는 15일 경향신문에 “일반적으로 도로에선 앞차를 보고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갑자기 멈추면 추돌사고가 난다”며 “안전의무 위반이라고 보더라도 솔직히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30년 넘게 택시를 운행해 온 김모씨(69)는 “현실적으로 운전을 할 땐 차량 흐름을 고려 안 할 수 없다”면서도 “사실 서행하면 다 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호가 금방 바뀔지 안 바뀔지 모르니까 다들 본능적으로 속도를 높여 지나가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 판결이 나온 만큼 경찰도 이제 노란불에 안 서면 딱지를 떼는 건가”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이럴 바엔 노란불 없애고 빨간불, 파란불만 하자”는 비판과 “노란불은 정지하라는 것이지 빨리 가라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이 맞섰다.
이번 대법 판결이 난 사건에서 피고인을 변호한 한문철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지난 13일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 “정지선과 교차로의 거리가 짧고 해당 차량이 정지선을 8.3m 남겨둔 상태서 노란불로 바뀌었다”며 “좌회전 차량의 법정 속도인 시속 40㎞로 주행하더라도 반응시간 1초를 감안하면 정지거리는 19m가량이므로 교차로에서 멈추게 된다”고 말했다.
한 변호사는 이어 노란불에 급제동해 뒤따라오던 버스에 의해 사고가 난 장면을 보여주며 “모든 차가 안전거리를 지키는 게 아닌 현실에서 뒤차가 큰 버스나 트럭이면 제동거리가 더 길어 오히려 멈췄을 때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통안전을 담당하는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서기엔 늦었고 달리기엔 시간이 부족한 이른바 ‘딜레마 존’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데 해당 차량은 속력도 문제였다”고 말했다. 교차로에서 좌회전할 때 법정 시속은 40㎞인데 해당 차량은 시속 60㎞가 넘었기에 정지거리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는 “교차로의 주의의무는 그 범위가 넓은데, 이 사건처럼 시야 확보가 안 되는 경우엔 법정 속도 이하로 더 줄여서 주의하며 운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법원 판단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그간 대법원은 노란불이 켜졌는데도 교차로나 횡단보도 진입 전에 멈추지 않았다면 신호를 위반한 것이라고 일관되게 판결해왔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파란불에 교차로를 지나는 운전자는 신호가 바뀔지 몰라 빨리 가려고 가속하거나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고 감속하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며 “대법원 판단은 후자처럼 하자는 취지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신호가 있는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뀔 것을 대비할 땐 가속보다 감속하는 식으로 운전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딜레마 존에서 어떻게 운전해야 할지 명확한 법 규정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