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담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상담사 모임, 다다름’ 대표
“퀴어 퍼레이드에서 우연히 제가 상담을 했던 내담자를 만나 반가웠던 경험이 기억에 남아요.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사건은 아니지만 ‘우리가 같이 연대하고 있구나’라는 게 생생히 느껴진 순간이거든요.”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상담사 모임, 다다름’의 대표이자 8년 차 심리상담사 박도담씨(33)는 16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상담 경험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실 상담으로 인생이 갑자기 변하는 건 아니지만, 내담자가 더 이상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은은한 변화’가 시작될 때 성소수자 상담사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씨가 대표로 있는 다다름은 2021년 활동을 시작했다.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냈던 트렌스젠더 김기홍·이은용·변희수씨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는 걸 보면서 “더 이상 개인적으로 슬퍼하고 분노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담사로서 이들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우선 온라인에서 성소수자와 연대하고자 하는 상담사들을 모았다. 당시 모인 상담사 600명과 성소수자 연대 성명을 발표한 것이 다다름의 시작이었다.
현재 다다름은 ‘퀴어 프렌들리한 상담사 리스트’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 해당 리스트의 상담사들은 모두 전문 자격증을 갖추고, 성소수자 관련 교육을 받은 상담사들이다. 이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 다다름은 성소수자 상담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상담사 대상 교육 활동도 해왔다. 올해부터는 매달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자조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불허된 ‘퀴어문화축제’, 지지부진한 ‘차별금지법’…“성소수자 정신 건강에 위협”
박씨는 “최근 내담자들이 종종 ‘결국에는 힘이 없으면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고 말했다. 최근 퀴어문화축제 관련 행사를 지방자치단체가 연이어 불허한 상황, 21대 국회에서도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못한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가 계속해서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해 혼자만의 자긍심으로는 자신을 지키기가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며 “성소수자들에게 나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날인 ‘퀴어문화축제’조차 사회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정신건강에도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자신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낙인을 내면화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다만 박씨는 이러한 상황에서 “억지로 희망만 보기보다는 좌절감을 남들과 나누며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담자들에게 ‘아플 때 아파하더라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아파하고, 다시 살아가자’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너무 더디지만 사회는 변하니까 자신을 가장 소중히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 인정하고 지원 이루어져야
박씨는 “상담사들이 성소수자 상담을 너무 어렵게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많은 상담사가 유독 성소수자 상담을 어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한다고 한다. 그는 “성소수자에 대해 많은 공부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성소수자 내담자도 진로·인간관계 등 평범하고 다양한 고민이 있다”며 “개인의 고유한 모습을 균형 있게 봐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성소수자가 사회적 차별로 인해 정신 건강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성소수자 전문 심리상담소’가 있어야 성소수자들이 ‘내가 이걸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구나’라고 인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