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BTS(방탄소년단)·테일러 스위프트는 물론이고, 셜록 홈스 같은 소설 속 가상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한 사회를 주도하는 유명 인사에겐 팬덤이 존재한다. 팬덤은 어떤 특정 인물이나 상품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미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는 <팬덤의 시대>에서 21세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팬덤이라고 했다.
팬덤이 사회 현상으로 떠오른 건 소셜미디어 등장 이후다. 여기엔 불길한 측면도 있다. 열혈 지지가 어느덧 우리가 옳다는 확신으로 바뀌어 권력이 되는 순간이다. 트로트 가수 김호중씨 노래에 위로를 얻던 이들이 뺑소니 혐의를 받는 김씨를 옹호하기에 바쁜 것도 그런 경우다.
“일어날 수 있는 비일비재한 일(뺑소니)인데 오히려 솔직한 별(김호중)님을 칭찬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김씨 팬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김씨는 지난 9일 밤 서울 강남에서 접촉 사고를 내고 달아난 뒤, 사건 발생 17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서에 출두했다. 김씨 매니저가 ‘내가 운전했다’는 취지로 거짓 자백까지 했다. 김씨는 경찰의 추궁 끝에야 범행을 인정했다.
김씨 소속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달 예정된 공연을 강행하겠다고 한다. 김씨는 이전에도 폭행 시비, 도박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문제없이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스타’가 법을 지키든 말든 그를 감싸주는 팬들이 있어서였다.
2013년 가요계에 데뷔한 김씨는 영화 <파파로티> 실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팬덤 아리스(ARISS)는 막강한 화력을 자랑한다. 아들·손자 같은 그에게 무엇이든 해주고픈 중장년층이 팬덤을 이끌고 있다. 그의 첫 정규앨범이 판매량 53만장을 기록할 줄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나.
팬덤은 스타를 위해 틀린 것은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철벽 방어가 팬덤 전체의 목소리도 아닐 것이다. 팬이라면 어긋난 ‘팬심’을 이용하는 이들에 맞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김씨가 잘못을 뉘우치면 팬들은 큰 박수로 맞을 것이다. 저널리스트 본드는 팬덤은 “건설에 사용될 수도 있고 파괴에 사용될 수도 있는 다이너마이트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 폭발력이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우리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