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점선면 5월14일자(https://stib.ee/OeMC)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단 하나의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를 클릭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국민연금 가입내역서를 떼어 보니 저는 지금까지 총 2000만원이 넘는 연금보험료를 냈더라고요. 국민연금공단에서 예상 연금액을 조회하니 만기(60세)까지 연금보험료를 내면 수급개시연령(65세)부터 매월 100만원대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군요.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에는 기금 적립금이 1000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해서 1036조원이 쌓여 있다는 홍보 배너가 보이네요.
미래를 굳건하게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숫자들을 놓고 ‘국민연금 못 믿겠다’는 말이 왜 이렇게나 많이 들려올까요? 심지어 국민연금이 ‘폰지’라는 표현까지 보이네요.
레터를 준비하며 느낀 건 국민연금 개혁의 방향은 물론이고 연금의 성격과 기능, 부담을 나눌 의지와 방법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서 사회적 합의가 없다시피 하다는 거였어요. 범인으로는 역시나 ‘정치’를 꼽게 됩니다. 국민연금 개혁이 또 다시 때를 놓칠 위험에 처한 지금, 우리 사회가 ‘연금 대타협’을 이뤄내는 장면을 그려보며 레터를 썼습니다. 제발, 좋은 개혁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 국민연금 가입내역서는 카카오톡 지갑 서비스로도 쉽게 떼어볼 수 있어요. 예상 연금액은 국민연금공단 앱에서 간편하게 확인 가능하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기를 추천해요😀
이미 늦은 개혁, 더 늦을수록 ‘오싹’
· 국민연금 제도는 1988년 도입됐어요. 지금까지 1998년(김대중 정부), 2007년(노무현 정부) 총 두 차례 개혁이 있었습니다.
· 국민연금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연금 ‘재정계산’을 해야 합니다. 2023년 발표된 재정계산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 재정은 2041년부터 적자가 되고, 2055년에는 쌓여 있던 연금 기금이 다 소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현재 국민연금은 ‘낸 것보다 많이 받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제도 도입 당시에는 인구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저출생과 고령화 때문에 인구 전망이 확 바뀌었습니다. 연금개혁을 미룰수록 미래세대 부담은 더욱 가중됩니다.
·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 소득대체율은 40%예요. 월 소득의 9%를 40년 동안 꼬박꼬박 내면 벌던 돈의 40%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연금은 65세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 2022년 기준 OECD 국가들의 공적연금 평균 보험료율은 18.4%입니다. OECD 국가들은 우리 국민연금(9%)에 비해 평균 2배 수준의 보험료 부담을 지고 있다는 뜻이죠.
1. 연금 앞에선 ‘회피형’ 정치
국민연금 개혁 앞에서 정치는 꾸준히 ‘회피형’이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연금보험료 더 내자’는 말을 해야 하는데, 월급 줄어든다는 소리니 쉽지는 않죠. 연금개혁이 괜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비유되는 건 아닐 겁니다.
마지막 연금개혁이 있던 2007년 이후, 역대 정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회피’해왔는지 볼까요?
이명박 정부(2008~2013년)는 노무현 정부 말기 개혁을 구실로 연금 문제를 그냥 넘겼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소득대체율을 줄여서 연금 지속 가능성이 대폭 개선됐거든요.
박근혜 정부(2013~2017년)도 국민연금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2015년 공무원연금을 개혁했어요. 국민연금에 비해 여론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문재인 정부(2017~2022년) 역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코로나19 대응 등 다른 이슈가 많았다는 거죠. 그 사이 재정계산 결과는 아래와 같이 변해 왔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을 개혁하겠다는 메시지를 내긴 했지만 정작 정부의 입장을 정리해 내놓지 않았어요.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원칙만을 밝혔을 뿐이에요. 올린다면 얼마나 올려야 할지, 소득대체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담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꾸린 시민대표단은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선택했어요. 정부·여당의 연금개혁 입장과 반대되는 결론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연금개혁을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했습니다.
2. 연금, ❓ 내고 ❓ 받기
현재는 월 소득의 9%를 다달이 연금보험료로 내죠. 최대 가입기간인 40년을 납입하면 벌던 월 소득의 40%를 달마다 받습니다(소득대체율 40%). 현재 국민연금은 ‘9%-40%’ 조합입니다.
시민대표단은 다른 두 가지 안을 검토했습니다.
1안은 ‘더 내고 더 받는’, ‘13%-50%’ 조합입니다.
2안은 ‘더 내고 그대로 받는’, ‘12%-40%’ 조합입니다.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하려면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결국 핵심은 ‘소득대체율 논쟁’인 거예요.
1안을 지지하는 쪽은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돼도 국가 재정을 투입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은퇴 후 국민연금이 사회안전망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년에 ‘용돈 연금’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당근’ 없이 보험료율만 올리자고 하기엔 국민 설득이 어렵다는 판단도 깔려 있어요.
어차피 쌓아둔 기금만으로 연금 지출을 다 감당하지 못하는 건 사실입니다. 언젠가는 국가 재정이 들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2안을 지지하는 쪽은 소득대체율 인상 시 닥칠 미래세대 부담을 걱정합니다. 저출생·고령화로 사회가 부양할 노인 수가 점점 늘기 때문에, 국가 재정을 투입하더라도 미래세대의 책임이 버거워진다는 점을 우려하죠. 언젠가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질문에 또 다시 부딪힌다는 거예요.
1안을 지지하는 쪽은 연금개혁을 또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지금 미뤄둔 ‘방울 달기’가 나중에 쉬우란 법은 없습니다.
3.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보험료율, 올릴 거면 한시라도 빨리 올려야 미래 연금 재정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겠죠.
여야는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데까지는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은 소득대체율 45%,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 43%를 고수하면서 합의가 불발됐고,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위 위원장은 “사실상 21대 활동을 종료”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연금개혁이 22대 국회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2022년 연금개혁 논의가 본격화된 이후 지금까지 밟은 과정을 모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새 국회에서 새 연금개혁특위를 구성하고, 새 특위 위원들이 소득보장론과 재정안정론을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고, 새로 토론하고…. 시간이 적잖이 걸리겠죠.
선거도 다가옵니다. 2026년에는 지방선거, 2027년에는 대선이 있어요. 선거 표심을 의식하는 여야가 개혁에만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까요?
1. 국민연금이 호출한 세대론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 소진된다는 게 2023년의 정부 재정계산 결과입니다. 연금개혁이 없다고 가정하면 2055년부터는 그해 거둬들인 보험료로 그때그때 연금을 줘야겠죠. 이 경우 2055년 전후 경제활동인구는 소득의 3분의 1 정도, 최대 35%를 연금보험료로 내야 한다고 합니다.
연금을 둘러싼 세대 갈등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보험료 9% 내던 사람들 연금 주려고 우리 소득의 35%를 떼어간다.” 미래에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 세대를 생각하면 가질 법한 불만이죠. 노년부양비도 급등하는 추세고요.
시민대표단 내 18~29세도 과반이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나자 해석이 분분했어요. 20대는 장래 보험료 부담을 생각해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을 택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거든요. 20대도 노후를 걱정해 높은 소득대체율을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분석보다 더 중요한 건 ‘세대론’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겠죠. ‘이 세대가 저 세대를 등쳐먹는다’가 아닌 ‘이 세대와 저 세대가 어떻게 공존할까’를 말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2007년 당시 연금개혁에 참여했던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연금 선진국들은 후세대 부담을 완화하는 연금개혁에 적극 나섰다”고 했습니다. 보험료율은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낮추고, 연금 수급개시연령은 뒤로 미루는 개혁을 하고 있다는 거죠. 오 위원장은 “21세기 초고령사회에 적응하는 세대 간 연대의 새로운 모습”이라고 평가했어요.
그에 비해 세계에서 가장 불리한 인구 구조를 가진 한국에서는 ‘소득대체율 인상’을 전제로 논의가 이뤄졌죠. 오 위원장은 “말로는 ‘세대 간 연대’를 표방하지만, 실제는 현 세대 이해에만 갇혀 있는 우리 사회 현주소”라고 지적했어요.
2. 다른 연금은요?
21대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활동 종료를 선언할 때, 국민의힘 측 특위 간사(대표)는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위해선 22대 국회에서 구조개혁 논의도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구조개혁이란 국민연금과 타 연금(기초연금*·퇴직연금·직역연금 등)을 함께 테이블에 올려 연금 전반을 통합적으로 조정하는 작업입니다. 구조개혁 없이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소득대체율만 조정하는 건 의미가 없어서 21대 국회에서는 더 논의할 수 없다는 주장이에요.
구조개혁을 핑계로 한시가 급한 연금개혁을 미룬 게 아니냐는 괘씸함이 앞서지만 구조개혁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서로 다른 연금들을 함께 조정해야 국민의 노후 대비를 위한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겠죠.
오건호 위원장은 국민연금·기초연금·퇴직연금을 ‘연금 삼총사’라고 칭하면서 이 세 연금을 통합적으로 활용해 노후 대비를 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요약하자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데 국가 재정을 들이느니 이를 기초연금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데 쓰자는 식이에요. 퇴직연금은 중도 해지를 엄격하게 제한해서 일시금으로 타는 것을 막고요. 그래야 노후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겠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오히려 상위층일수록 혜택을 보는 ‘역진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상위층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누락 없이 꽉 채우기 유리하고, 월소득이 높을 가능성도 큽니다. 가입기간이 길고 소득액이 크니까 그만큼 연금 수령액도 커지고, 소득대체율이 오르면 그 혜택까지 더 톡톡히 누리겠죠?
3. 국민연금, 이젠 믿기로 해요
점선면 독자님들은 대부분 국민연금을 신뢰한다고 답변해 주셨어요. 독자님은 어떠신가요?
저는 레터를 쓰면서 국민연금을 섣불리 불신하는 말은 삼가겠다고 다짐했어요. 우리 모두가 은퇴 후에도 하고 싶은 걸 크게 참지 않아도 되는 노인일 수 있으려면, 공동의 안전장치인 국민연금이 그 무엇보다 탄탄해야 하니까요.
알아야 믿겠더라고요. 이렇게 유심히 챙겨볼 거리가 또 하나 늘었습니다. 정치가 얼마나 책임 있게 연금개혁을 완수해낼지 함께 눈 부릅뜨고 지켜봐 주세요. 제 역할을 못한다면 그때 책임을 매섭게 물어봐요.
오건호 위원장이 전혜원 시사인 기자와 함께 쓴 책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중 한 부분을 소개하며 오늘 레터를 맺습니다.
“저는 한국사회에 상호신뢰, 사회연대가 부족하다고 봐요. 정치적 이슈에선 강하게 집결하지만, 사회정책 의제를 공적으로 풀어가는 경험은 일천합니다.
이제부터 만들어야죠. 시민들이 ‘어, 우리도 할 수 있네?’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적 사례를요. 그러면 ‘우리가 그 일도 해냈는데, 얼마든지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 이웃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공동체의 가치도 가슴에 품을 수 있어요. 사회연대로 재사회화되는 거죠. 연금개혁이 그 사례가 되기를 바랍니다.”
◆ 국민연금을 마지막으로 개혁한 지 17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저출생·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연금의 지속 가능성은 크게 하락했습니다.
◆ 17년 만에 모처럼 마련된 연금개혁 기회에서 여야는 소득대체율 관련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논의를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개혁 여부는 불투명해집니다.
◆ 국민연금, 세대 간 대립이나 갈등보다는 연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국민연금과 타 연금을 연계해 조정하는 ‘구조개혁’도 필요합니다. 국민연금이 신뢰를 얻기 위한 길입니다.
※글에 첨부한 링크와 추천 기사를 모두 보시려면 뉴스레터 점선면 원본(https://stib.ee/OeMC)을 확인해 주세요. 매주 월·수·금요일과 격주 화요일 오전 7시 메일함에서 점선면을 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에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