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지난 16일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기각 결정하면서 근거로 제시한 핵심 단어는 ‘공공의 이익’이었다. 증원으로 인해 기존 의대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소지가 있긴 하지만 의료개혁이라는 공공 복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본 것이 결정의 주요 골자다. 치열한 의·정 갈등의 도화선이 됐던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해서도 “산술적 근거가 미흡할 수는 있지만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현실”이라며 증원의 절차적 정당성과 필요성 모두를 인정했다. 향후 본 소송에도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법원의 결정을 다시 톺아보면, 법원은 정부의 의대 증원 처분으로 의대생들이 손해를 볼 수 있고 그에 따른 손해 예방을 위한 긴급성이 인정되지만 그보다 공공복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필수의료·지역의료가 어려움에 처해 있고, 의사인력 재배치만으로 한계에 다다랐다는 판단이다.
특히 의대 정원 논의의 역사를 결정문에 밝힌 것이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제주대 의대가 신설되면서 1998년 3507명이 된 이후 증원된 적이 없고, 2007년 의약 분업 이후 정원 감축으로 2006년 3058명이 된 이후 동결된 상태”라고 결정문에 적었다. 재판부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역대 정부가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고려해왔다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정부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다 무산된 사례도 제시했다. 지난 정부에선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공공의대 신설과 함께 의대 정원 증원을 시도했지만 의료계의 저항으로 증원이 무산됐다는 점을 들었다. 이는 현재 의료계가 “정부의 2000명 정원 증원이 갑작스러운 정책”이라고 주장한 것과 다르다. 재판부는 역대 정부의 일련의 상황을 보면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비록 2000명이라는 산술적 근거가 미흡할 순 있어도 의사인력이 부족한 것은 현실이기 때문에 증원에 대한 합리성이 있다”고 봤다.
오히려 재판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의 역할을 따져볼 때 정부 정책 반대를 위한 파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의사 파업 등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정부의 의료정책에 문제가 있고 의료계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도 현재 의사들의 행동은 옳지 않다는 취지다.
‘원고(신청인) 적격성’에 대해선 1심 재판부와 ‘같은 듯 달랐다’. 1심은 의대생·의대교수·전공의·수험생 등을 모두 ‘제3자’로 보고 원고 적격성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내린 2심 재판부는 “제3자에게 원고적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이 사건 처분과 같은 의대정원 증원에 관해 그 누구도 다툴 수 없다는 결론이 된다”면서 의대생들의 원고 적격성은 인정했다. 이들이 의대 정원으로 인원이 대폭 늘었을 경우 부족한 교육시설 등을 이유로 학습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이들의 이익보다는 공공 복리가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이들의 청구는 기각했다.
이제 남은 건 대법원의 결정과 본 소송이다. 의료계가 이번 집행정지 신청 각하·기각 결정에 재항고할 계획을 밝히면서 해당 결정은 대법원의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본 소송 역시 대법원 결정 이후 계속될 전망이다. 의·정갈등에 대해 지난 2월 당시 대법관 후보자였던 신숙희 대법관은 “정치, 사회 영역에서 타협으로 해결될 수 있길 바란다”며 “(분쟁이) 법원의 영역으로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타협을 이루지 못하고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대법원 결정은 빨라야 오는 6월 말에 나오게 돼 그때까지 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