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화성시에는 ‘탄탄주택협동조합’이라는 협동조합이 있다. 전국 도처에 연이어 터지고 있는 전세사기의 악몽을 화성시 동탄 지역 역시 피해갈 수 없었다. 세금 문제까지 얽히면서 주민들이 빚더미에 놓이게 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전세사기 특별법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정부의 무관심이 이어지자, 주민들은 마냥 공공의 결정과 지원을 기다릴 수 없었다. 다행히 민간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사회주택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조금씩 자원을 모아 ‘탄탄주택협동조합’을 설립했고, 피해주택들을 우선 인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급박한 위기를 넘긴 이후에는 전월세 전환과 매각 등을 통해 피해자들은 퇴거 시 보증금 대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이유는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이다. 전세사기는 개인 간의 거래 사기가 아닌 각종 정책과 제도의 부실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기에, 선순위 대항력, 세금 체납, 신탁 시스템의 한계 등 여러 이슈가 결합되어 있다. 유형별로 해결 방안도 상이해 참고할 수 있는 사례조차 드물고 절차 또한 매우 오래 걸린다. 빚을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세입자들은 무기력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반면, 정부는 개인보다 위기에 대응할 자원이 많고 버틸 체력도 강하다. 그래서 제안된 것이 ‘선 구제 후 회수’이다. 정부가 전액이 아닌 최우선변제금 수준의 소액 보증금 채권을 매입해 세입자들을 먼저 구제하고, 그 이후 주택마다 얽힌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며 지출한 비용을 회수하는 방법이다.
1억원의 집을 샀다고 해서 그 순간 1억원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중에 집을 매각하면 시세에 따라 회수할 수 있는 것이 상식이다. 채권 예상 금액을 실제보다 10배 넘게 부풀려 ‘수조원의 세금 낭비’라고 왜곡한 정부의 공식 입장도 문제이지만, 수천억원이 소요되더라도 언젠가는 상당 부분 회수할 수 있는 예산을 마치 일회성 지출처럼 표현한 것도 황당하다. 자원이 부족한 ‘탄탄주택협동조합’에서도 해낸 일이다. 정부가 이조차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무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미 부실한 건설기업의 PF 부채는 수조원을 쓰며 ‘선 구제’ 해준 전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빚으로만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국민도 아닙니까?” 지난 5월1일 세상을 떠난 여덟 번째 전세사기 희생자의 마지막 외침이다. 최소한의 조치만을 기다리는 세입자들의 불안을 외면하지 말자. 전세금 전액도 아닌 최우선변제금과 견딜 시간을 요구할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5월28일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통과를 당론으로 발표한 만큼, 이번만큼은 희망고문으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거부권은 벼랑 끝에 몰린 국민을 밀어버리라고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