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라이시 애도하나, 손에 많은 피 묻혀”···국제사회 엇갈린 추모

조문희 기자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비롯한 헬기 사고 사망자를 애도하는 촛불이 이라크 한 지역에 켜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을 비롯한 헬기 사고 사망자를 애도하는 촛불이 이라크 한 지역에 켜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헬기 사고로 사망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에 대해 각국이 애도 메시지를 내놓고 있으나 이란과 친소 관계, 갈등의 깊이에 따라 메시지의 결에서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애도를 표명하면서도 라이시 대통령의 과오를 꼬집었고, 이스라엘에선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을 기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 정부는 20일(현지시간) 국무부 대변인 성명에서 “헬기 추락 사고로 라이시 대통령과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교부 장관, 다른 정부 대표단 일원이 사망한 것에 대해 공식적인 애도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애도 표현이) 검사나 대통령으로서 그의 이력 또는 그의 손에 피가 묻었다는 사실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며 “라이시는 대략 40년 이란 국민을 탄압하는 데 가담했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이란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과 관련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해 왔다. 라이시 대통령이 과거 정치적 반대파를 수천 명 학살하는 데 앞장서 ‘테헤란의 도살자’로 불린 이력 등도 두 나라 사이 갈등 요인이었다. 미국 정부는 2019년 라이시 대통령을 제재 대상 목록에 올렸다.

애도 표명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국무부 대변인 명의인 것도 눈길을 끌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란 대통령 사망에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역내 안보를 불안정하게 만든 데 대해서는 이란의 책임을 계속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도 강경한 비판 메시지가 나왔다. 아미차이 엘리야후 이스라엘 예루살렘 및 유산 담당 장관은 같은 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건배” 문구와 함께 와인 잔 이미지를 게시했다. 다른 글에선 “대량 살인자의 죽음에는 애도가 필요 없다”고도 했다. 이스라엘 랍비들이 “테헤란의 교수형 집행자”, “개(dog)” 등 표현으로 라이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길라드 에르단 주 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라이시 대통령 등 사망자를 위해 묵념한 것을 비판하며 “다음 순서는 빈라덴을 위한 묵념, 히틀러를 위한 철야 기도냐”고 날을 세웠다고 UPI는 전했다.

반면 이란과 외교관계를 맺어온 러시아, 중국, 튀르키예 등 국가수반은 직접 애도를 표명했다. 튀르키예는 국가 애도의 날을 선포했고, 장기 내전 중 이란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도 대통령을 잃은 이란에 연대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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