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꿈, 이재명의 길

선학태 전남대 명예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가 되었다.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 조각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2009년 5월23일 표표히 떠나간 이 시대의 풍운아 노무현. 차별과 소외, 특권과 반칙으로 얼룩진 세상을 바꿔 보자고 온몸으로 절규했던 그의 웅변이 아직도 가슴을 때리는 듯하다.

노무현이 열망한 비전은 유러피언드림이다. 유러피언드림은 자유경쟁보다는 연대, 효율성보다는 형평성, 배제보다는 포용을 지향하는 가치 패키지다. 노르딕·게르만 국가들의 사회경제와 정치에는 이런 가치들이 녹아 있다. 즉 사회경제 이해관계자 간 사회적 대화와 정당 간 연합정치가 맞물려 작동하며 보육·교육·의료·요양 등 사회공공 서비스로 차별과 소외 없는 사회통합을 제도화했다.

노사정연합과 정당연합 간 연동은 유러피언드림의 백미(白眉)다. 노사정연합은 자본이 원하는 ‘유연성’과 노동이 원하는 ‘사회안전망’이라는 갈등적 정책의 맞교환을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협약을 끌어냈고, 좌우 초(超)블록 정당연합은 행정부·의회 협치로 이를 입법화했다. 유러피언드림의 정수(精髓)는 정책 콘텐츠 그 자체가 아니라 ‘포용적 공동통치(inclusive co-governance)’에 있다.

유러피언드림의 정치경제 다이내믹스야말로 노무현에게 21세기 ‘인간의 얼굴을 가진’ 대한민국을 창조하는 나침반이었다. 실제 그의 국정 운영의 전략과 지향점은 노동, 공교육, 의료, 저출생·고령화, 차별, 빈곤, 양성평등, 국가균형발전 등 다양한 국가 어젠다에 관해 이해관계자·전문가·시민단체·정부가 참여한 사회적 협의 시스템이었고, 동반성장 담론과 함께 사회공공 서비스를 집대성한 ‘비전 2030’이었다. 그 정치적 인프라는 권력 분점·공유다. 이를 위해 그는 고(高)비례성 선거제, 다당 연합정치, 분권형 대통령제를 원했고, 거대 야당에 이를 설득하기 위해 대연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유러피언드림은 전전반측 고뇌한 노무현의 꿈이었다.

꿈이 절절하면 현실이 된다고 했을진대, 더불어민주당은 노무현의 꿈과 멀어져간다. 언필칭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민주당엔 윤석열 정권과 차별화하는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반노동·반북한·반야당 극우 포퓰리즘적 양극화 통치 행태를 드러내는 윤석열 정권에 맞서, 민주당은 극도의 복수심에 불타 정권 타도를 겨냥한 당파적 양극화 정치에 익숙해 있을 뿐이다. 상극상살(相剋相殺)의 형국이다. 22대 국회는 민주당 입법 독재와 대통령 거부권 독재가 충돌하는 역대급 최악의 ‘막장 국회’가 될 공산이 크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재앙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단언컨대 승자독식 선거제, 국회 권력 독점 양당제, 제왕적 대통령제를 잇는 제도적 매트릭스를 내장한 ‘87년 헌정체제’하에선 민주당이 정권 탈환에 성공해도 오늘의 정치판을 바꿀 순 없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과는 다른 차별화 전략에 나서야 한다. 청컨대 초당파적 연합정치와 포용적 국정 거버넌스의 제도화를 유인하는 ‘포스트 87년 헌정체제’의 창출 프로젝트에 천착하라. 그래야 ‘한국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향한 ‘변혁적 탈(脫)양극화’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이재명 대표도 팬덤 정치에 영합하는 정치공학적 진영 정치에서 손을 떼고, 세상을 바꿀 ‘포스트 87년 헌정체제’를 디자인하는 국가 비전을 탐색하는 데 지혜와 열정을 바쳐야 한다. 노무현의 유러피언드림은 차기 대권을 욕망하는 이재명이 가는 길에, 국민 가슴을 뛰게 하는 국가 비전의 창의적 영감을 줄 것이다.

이제 민주당은 명실공히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이재명의 유일(唯一)체제다. ‘이재명은 민주당을 위하여, 민주당은 이재명을 위하여’ 구호가 낯설지 않다. 이재명이 결단하면 민주당은 행동할 것이다.

선학태 전남대 명예교수

선학태 전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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