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작은 전시회(20일~8월16일 서울대 중앙도서관)를 하나 소개한다. 전시회의 제목은 “ut poema pictura, ut pictura poema”이다. “그림은 이야기처럼, 이야기는 그림처럼”으로 번역된다. “그림 그리는 것처럼 이야기를(ut poiesis pictura, <시학> 362행)” 지으라는 호라티우스(기원전 65~8년)의 말을 약간 바꾼 것이다. 전시회를 준비한 학생들은 “그림에서는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에서는 그림을 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아 ‘poiesis’를 ‘poema’로 바꾸었다고 한다. 내 생각에, 이 바꿈이 더 재미있다. 이 말의 원래 주인은 호라티우스가 아니고 시모니데스(기원전 556~468년)이다. 그의 말이다.
“이야기는 말하는 그림이고, 그림은 침묵하는 이야기다(poema pictura loquens, pictura poema silens).” (플루타르코스 <아테네인들의 영광> 3권 346장)
두 사람의 말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시모니데스의 말은 학생들의 기획에 힘을 실어준다. 전시회는 작가가 아니라 작품을 만나는 곳이므로. 그림에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이야기에서 그림을 살펴보는 재미를 맛보라는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 기획된 전시회이기에, 나도 그 기획에 동의한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표현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선사 시대의 암각화나 낙성대의 담벼락에 ‘귀주대첩’을 묘사한 벽화를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런 욕구를 표현하는 기법이 “에크파라시스(ecphrasis)”이다. 그림에 이야기를 선명하게 표현하고, 이야기를 그림처럼 표현해서 기억을 생생하게 만드는 기법이다.
지나다가 잠깐 멈춰 서서, 시모니데스의 말대로, 말하는 그림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침묵하는 이야기의 그림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물론, 보는 것에서는 들어보고, 듣는 것에서는 살펴보는 아름다움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마시라! 행여 실망한다면, 전시회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chalepa ta kala!)”는 말을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어려운 것은, 어떤 것이 왜 아름다운지를 알 때, 그것이 더 아름답다고 하지만, 나름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