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거부권

유설희·박용하·문광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21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6개 정당 소속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국회 본청 앞에서 특검법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열 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조태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21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6개 정당 소속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국회 본청 앞에서 특검법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열 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조태형 기자

윤 대통령,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정부의 권한 과도하게 침해해”
10번째이자 총선 참패 후 첫 행사

이재명 “국민과 싸우겠다는 선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이 자신도 수사 대상으로 열어둔 특검법을 거부하면서 ‘방탄 거부권’ 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은 “총선 민의 거부”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 재의요구안을 재가하는 형태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취임 후 10번째, 총선 참패 이후 처음이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여야 합의가 없고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인 점, 특검 구성이 야당 주도로 이뤄지는 점 등을 문제로 들면서 “헌법 수호 책무를 지닌 대통령으로서, 행정부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입법에 대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 비서실장은 “대통령께서는 이미 ‘경찰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를 지켜보고, 봐주기 의혹이 있거나 납득이 안 될 경우, 그때는 제가 먼저 특검을 하겠다고 주장하겠다’라고 뜻을 밝힌 바 있다”면서 “정부는 채 상병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일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국회로 돌아간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은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재의결에는 국민의힘 이탈표가 관건이다. 국민의힘 소속 113명 중 17명의 찬성표가 나오면 재의결 요건을 갖추게 된다. 재의결이 무산돼도 채 상병 특검 정국은 계속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재표결에서 부결되면 22대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22대 국회에서는 국민의힘 의원 수가 108명으로 8명의 이탈표만 나오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무력화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동운 공수처장의 임명안도 재가했다. 오 공수처장은 채 상병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하게 된다.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 6개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규탄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 정권은 말로는 사과한다고 하면서도 국민과 싸우겠다고 선언했다”면서 “국민이 준 마지막 기회를 걷어찬 윤 정권을 확실하게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은 오는 25일 서울 도심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하는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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