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확충’ 지시받은 기재부···작년 예산 ‘31.1조→29.3조’ 말 바꾸기 논란

김윤나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도 예산 편성 작업을 진행중인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연구·개발(R&D) 예산 규모를 두고 말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023년도 R&D 예산을 31조1000억원으로 집계했다가 최근 들어 29조3000억원으로 정정했다. 기재부는 올해 예산안을 지난해 9월 국회에 제출하기 전부터 새 기준을 적용했다고 밝혔지만, 예산안 국회 통과 직후인 지난해 12월에도 2023년도 R&D 예산 규모를 31조1000억원으로 공식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재부는 예산안을 편성할 때와 예산안끼리 비교할 때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정부가 입맛대로 R&D 예산 수치를 바꾸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는 지난 22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내년도 R&D 예산은 시스템 개혁과 함께 2023년 29조3000억원 대비 확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2023년 R&D 예산 규모는 31조1000억원이라던 기존 발표를 뒤집은 것이다.

기재부는 ‘R&D 예산을 대폭 인상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하고 있다. 기재부가 편성 중인 내년도 R&D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였던 2023년의 31조1000억원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R&D 기준을 재분류했다고 거듭 밝힌 것이다.

기재부는 2024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인 지난해 이미 R&D 예산안 분류 기준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2024년 R&D 예산 편성 과정에서 기존 2023년 R&D 31조1000억원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기준상 R&D로 분류하지 않는 대학 일반지원 성격 사업 등 1조8000억원을 비R&D로 재분류했다”며 “2024년 예산안 편성시 1조8000억원 이관분을 제외한 2023년 R&D 29조3000억원을 토대로 최종 2024년 R&D 26조5000억원(전년 대비 -2조8000억원)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재부가 2024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을 때는 지난해 9월이다. 기재부 논리대로라면 최소한 예산안 편성 당시인 지난해 9월 이전부터 2023년도 R&D 예산안 수치는 31조1000억원이 아닌 29조3000억원으로 수정됐어야 한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해 12월21일 공식 보도자료에서 2023년 R&D 예산을 31조1000억원으로 집계했다.

2024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지난해 12월21일 기획재정부가 낸 ‘2024년 예산 국회 의결·확정’ 보도자료 화면 갈무리.

2024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지난해 12월21일 기획재정부가 낸 ‘2024년 예산 국회 의결·확정’ 보도자료 화면 갈무리.

기재부는 해를 넘겨 지난 2월 발표한 ‘2024년 나라살림 예산 개요’라는 자료에서도 2023년 R&D 예산안을 31조1000억원으로 명시했다. 삭감 폭은 “14.6%”로 계산했다. 다만 같은 자료에 있는 ‘정부 R&D 투자 추이’ 그래프에서는 2023년 R&D 예산을 29조3000억원으로 제시했다. 삭감 폭은 “9.5% 감소”했다고 적었다. 같은 자료에서도 오락가락 통계를 혼재한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월5일 발표한 ‘2024년 나라살림 예산개요’ 자료 110쪽 화면 갈무리. 2023년 R&D 예산이 31조1000억원으로 표기돼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월5일 발표한 ‘2024년 나라살림 예산개요’ 자료 110쪽 화면 갈무리. 2023년 R&D 예산이 31조1000억원으로 표기돼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월5일 발표한 ‘2024년 나라살림 예산’ 자료 162쪽 화면 갈무리. 2023년도 R&D 예산이 29조3000억원으로 표기돼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월5일 발표한 ‘2024년 나라살림 예산’ 자료 162쪽 화면 갈무리. 2023년도 R&D 예산이 29조3000억원으로 표기돼 있다.

기재부가 2023년도 R&D 예산 규모에서 1조8000억원을 뺀 것은 내년도 R&D 예산 편성을 앞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그간의 R&D 삭감 기조를 바꿔 R&D 예비타당성 조사 폐지와 투자 규모 대폭 확충을 지시했다. 기재부는 역대급 세수 펑크로 재정 여력이 크지 않아 R&D 예산을 대폭 확충하기 어려운 처지다. 기재부가 2023년 R&D 예산 규모를 31조1000억원이 아닌 29조3000억원으로 집계하면, 정부가 대폭 삭감한 R&D 원상회복을 위한 증액 기준도 4조6000억원에서 2조8000억원으로 줄어든다.

기재부 측은 예산안을 편성할 때와 정부가 통계를 낼 때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을 편성할 때는 모수를 조정해 1조8000억원을 덜어낸 29조3000억원을 기준으로 이듬해 예산을 편성했으나, 연도별 예산안끼리 비교할 때는 (이미 국회에서 확정된 31조1000억원의 수치를 변경할 수 없어서) 31조1000억원이 된다”고 설명했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R&D 예산 수치를 갑자기 바꾸면 국민에게 혼란만 준다”며 “기재부 입맛대로 R&D 예산 기준 잣대를 만든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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