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식물카페에 갔다. 언뜻 숲을 그대로 실내에 들여다 놓은 아름다운 정경으로 보였는데, 막상 들어가니 나무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심지어 쓰러져 있는 나무도 있었는데, 테이블 앞에 펼쳐진 맛의 향연에 정신이 팔려 나무들을 찬찬히 살필 겨를은 없었다. 병든 나무들은 반짝이는 조명과 플라스틱 전시물에 가려 포토존으론 손색이 없었다. 손님들은 이국의 차와 고급 디저트를 맛보며 나무들이 무참히 병들고 죽어가는 순간들을 배경음악처럼 즐겼다.
실내 식물원에서 붐비는 사람들로 탁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건강하지 못한 식물들의 상태에 의아했던 경험이 있다. 너구리 체험 카페에서 야생동물을 관람하는 데이트를 한 기억도 난다. 이화동 벽화마을을 산책하며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식물들은 병들고, 너구리는 죽고, 주민들은 관광객으로 인한 소음 때문에 이사를 한다고 했다. 그게 내가 휴일에 찾아간 힐링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놀러간 곳은 언제나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내가 즐긴 공휴일이 그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최초의 생물 전시는 1848년 독일의 생선장수인 하겐베크가 물개들을 커다란 욕조에 넣은 뒤, 사람들이 돈을 내고 구경하도록 한 것이다. 이 전시가 성공하자 물개들을 수도인 베를린으로 보내면서 동물거래가 이어진다. 아들인 카를 하겐베크는 동물거래상이 되어 하겐베크 동물원을 세우는데, 1881년에는 푸에고 군도에서 토착민들을 데리고 와 사람을 전시하기에 이른다. 사람 전시는 반응이 좋아서 베를린 공연으로 이어지는 등 크게 인기를 끌었다.
1904년 세계박람회에서는 필리핀 고산지역에 사는 이고로트족을 전시하는 인간동물원이 개최되었다. 1906년에는 뉴욕의 동물원 원숭이 우리에 콩고 피그미족 남성 벵가가 전시되었다. 1958년 벨기에 만국박람회는 콩고인들을 전시했다. 열대지역에서 살던 소수민족들은 추위에 독감에 걸려 죽고, 동물처럼 학대와 조롱을 받다 죽었다. 벵가는 충격과 후유증으로 자살했다.
5월 둘째 주말은 수족관 감금 종식 국제공동행동의 날이다. 12일에는 롯데 아쿠아리움 앞에서 북극 흰고래 벨루가 벨라를 방류하라는 시위가 열렸다. 전국 5개 수족관에서 벨라를 비롯한 고래 19마리가 생태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고통당하고 있다. 롯데는 2019년 방류를 결정하고 5년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송과 생크추어리 선정에 앞서 당장 전시부터 멈추어야 한다.
1860년대 한 관람객이 런던동물원 측에 항의전화를 걸었다. 관람객은 사육장 속의 울새가 축 늘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전시된 동물이 결코 건강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한 최초의 발견이었다. 그런데 그는 울새를 놓아줘야 한다거나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는 대신, 다른 멀쩡한 새로 바꿔달라고 항의했다. 우리는 전시된 생물들의 고통을 발견하지만 이는 연민으로도 채 이어지지 못한다. 이들의 고통은 모처럼의 힐링을 방해하는 불쾌한 대상일 뿐이다. 먹고 마시며 즐기는 사이에 실은 그 고통의 원인이 우리 자신이라는 진실은 종적을 감춘다. 병든 자연을 배경화면 삼아 환하게 웃는 표정을 SNS에 올리며, 우리는 그것이 힐링이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