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현장실사를 나온 환경부 담당 사무관이 청주동물원을 둘러보았다. 작은 욕조 같은 수달사, 모든 면이 시멘트인 곰사, 몇 발자국 걸어가면 끝인 호랑이사. 그나마 지붕이 없어 사육장 크기의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것이 동물들의 위안이었다.
실사를 마친 사무관은 이런 동물원에 서식지외보전기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이름을 주면 그에 걸맞은 내용을 반드시 채우겠다고 했고 사무관은 생각에 잠겼다.
사무관의 큰 그림이었는지 간절함으로 흔들리는 내 눈빛이 다소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없지만 2014년 2월 서울대공원, 에버랜드 다음으로 환경부 서식지외보전기관이 됐다. 그 명분으로 국내 멸종위기종 연구를 시작했고 그 무렵부터 4년의 기록을 담은 영화가 왕민철 감독의 <동물, 원>이다.
물고기 먹는 법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는 ‘아기 물범’ 초롱이, 청주동물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터줏대감 표범 직지, 생의 마지막 길목에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호랑이 박람이, 야생의 세계로 나갈 준비를 밟고 있는 독수리 하나, 사람에게 길러져서 사람만 찾는 앵무새 체리 등….
<동물, 원>은 울타리 뒤 보이지 않는 세상, ‘반야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동물원의 야생동물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잔잔한 일상을 담아냈다. 영화는 동물원이 진귀한 볼거리가 즐비한 공간이거나 혹은 갇혀 있는 동물의 슬프고 안타까운 풍경을 보여주는 ‘특별한 공간’이 아닌 청소, 번식, 사육, 진료, 수술, 방사까지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반복되는 일상이 이어지는 공간이라는 점을 담담하게 전했다.
작년 서식지외보전기관 지정 10주년을 마음속으로만 기념하다가 그 당시 사무관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무관은 좀 놀랐다며 10년이나 지났는데 연락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2024년 5월10일 청주시립동물원은 국내 첫 거점동물원이 됐다. 10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내용을 가지고 이름을 받았고 다른 동물원들을 선도하는 역할까지 주어졌다. 2018년 웅담채취용 사육곰을 시작으로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영구장애동물, 사설 동물원에서 살았던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가 된 뒤 나갈 수 있는 토종 야생동물은 방사훈련을 거쳐 자연으로 복귀시키고 있다. 이 과정은 영화 <생츄어리>의 소재가 되었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상영작으로 선정된 후 오는 6월12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청주동물원을 생츄어리(착취당한 동물이나 상처 입은 동물 등을 구조해 보호하는 시설)로 바꾸고 싶어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동물원을 당장 없애기는 힘들다. 동물원에서 태어나 적응한 모든 동물을 자연에 풀어 주는 것은 방사가 아니라 유기다. 내 마음 편하게 하자고 하는 일에 가깝다. 우연히 동물원 울타리를 나가게 된 동물들의 당황한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보다는 무계획적인 번식을 막고 남은 동물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동물들에게는 이익이다. 또 외국 출신의 동물이 나가서 국내 환경에 적응해 잘 살게 된다고 해도 법적으로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되어 제거 대상이 된다.
사자 바람이가 살았던 동물원에서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독수리가 좁은 새장에 전시되고 있었다. 자연의 일원인 독수리가 구조 후 개인의 소유가 된 것이다. 독수리는 사체 청소부로서 생태적 지위를 갖는다. 독수리의 강한 위산이 사체의 병원균까지 사멸시키는 덕분에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독수리를 포함한 야생동물은 생태계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는 개별적 존재이다. 야생동물과의 공존은 개별적 존재를 인정하고 소유욕을 내려놓을 때 이루어진다.
동물원이 있어야 한다면 사람이 아니라 야생동물에게 필요한 장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나 노령 야생동물이 여생을 보내거나 다친 야생동물이 자연으로 복귀하기 전 적응훈련을 받는 곳, 방문객들은 야생동물이 이렇게 오가는 과정을 경험하고 같이 살아갈 방법을 고민해 보는 곳이면 좋겠다.
동물원이 야생동물을 소유하지 않고 잠시 머무는 존재의 안식처가 되면 어떨까? 갖지 않기로 하면서 더 많은 것을 향유할 수 있다. 중고교 교과서에 실렸던 송순의 시조 ‘십 년을 경영하여’(십 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달 한 칸 나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청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를 기억한다. 덕분에 ‘차경’이란 멋진 단어를 알게 됐다. 자연은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야생동물의 구조와 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특별한 동물원’ 청주동물원에서 20년 넘게 수의사로서 일하고 있다. 야생동물 수의사가 되고 싶었으나 수의대 졸업 당시 야생동물을 치료하며 사는 직업이 없어 대안으로 동물원에 입사했다. 동물원이 갈 곳 없는 야생동물들의 보호소이자 자연 복귀를 돕는 야생동물 치료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저서로는 <코끼리 없는 동물원>(2021)이 있다.